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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 한국 농구의 든든한 중심, 원주 DB 프로미의 리더.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4. 11. 8. 0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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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는 한국 프로농구의 대표적인 빅맨으로, 206.3cm의 신장과 204cm의 윙스팬을 자랑하는 원주 DB 프로미의 중심 선수입니다. 199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성남초등학교, 성남중학교, 낙생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에서 스포츠지도학을 전공한 김종규는 농구에 대한 열정과 뛰어난 신체 조건을 바탕으로 2013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1순위로 창원 LG에 입단했습니다. 이후 2019년부터 원주 DB 프로미에서 뛰고 있으며, 김종규의 탁월한 운동 능력과 경기 장악력으로 팀의 기둥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습니다. 창원 LG 시절부터 김종규는 '내 꺼 하자'를 응원가로 삼으며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원주 DB로 이적 후에는 구단의 자작곡이 김종규의 새로운 응원가로 자리 잡았습니다. 센터 포지션을 맡아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과 탁월한 공격력, 블록 능력으로 팀의 득점 기회를 만드는 한편 상대의 득점을 저지하는 역할을 해내며 원주 DB의 핵심 전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종규의 화끈한 경기력과 상대 팀을 압도하는 리바운드, 공격 리듬을 조절하는 리더십은 김종규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켜 줍니다. 김종규는 코트 밖에서도 팬들과 소통하며 ESTP의 외향적인 성격을 바탕으로 밝은 에너지와 활기찬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술체육요원으로 병역 특례를 받은 김종규는 꾸준히 몸 관리를 하며 장기적인 선수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원주 DB에서의 활약을 통해 한국 농구의 발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농구계에서 김종규는 한국 대표 빅맨으로 손꼽히며, 향후 김종규가 만들어갈 기록과 경력이 더욱 기대되는 선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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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규: 원주 DB 프로미의 중심, KBL 최고의 센터

 

김종규는 원주 DB 프로미의 핵심 센터로, 한국 농구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선수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김종규는 낙생고등학교 시절부터 고교 농구계를 압도하며 뛰어난 잠재력을 보였다. 김종규는 고교 최고의 센터로 평가받으며 대학 진학을 앞두고 많은 대학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안을 받았다. 그 중에서 경희대학교가 김종규의 입학을 이끌어내며, 대학 시절 김종규는 팀을 두 차례 한국대학농구리그 결승에 올리며 우승을 차지하는 등 농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의 성장 과정에서는 센터 전담 코치의 부재와 가드 중심의 농구 스타일로 인해 기량 발전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규는 성실히 훈련에 임하며 능력을 발휘했으며, 그 영향력은 KBL 드래프트에서 김종규의 선발을 두고 각 구단들의 치열한 경쟁을 불러일으켰다.

 

2013년, 창원 LG 세이커스는 김종규를 1라운드 1순위로 지명하며 팀의 미래를 맡길 선수로 선정했다. 프로 첫 시즌인 2013-14 시즌에서 김종규는 빠르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KBL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 특히, 11월 1일 안양 KGC와의 경기에서 데뷔하며 9득점 6리바운드 2블록을 기록, 이어진 서울 SK 나이츠와의 경기에서는 20득점 9리바운드 2블록을 기록하는 등 활약을 펼쳤다. 이러한 플레이로 김종규는 빠르게 LG의 주요 자원으로 자리잡았으며, 팀의 골밑을 보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다만, 김종규는 피지컬에 비해 센터로서의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함을 보였고, 그로 인해 일각에서는 김종규의 기량이 정체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었다.

 

김종규는 LG에서의 첫 시즌을 통해 센터로서의 기량을 더욱 갈고닦았으며, 팀의 상승세에 큰 기여를 했다. 김종규의 덩크슛은 많은 팬들의 이목을 끌었으며, 김종규가 성공시키는 덩크슛은 ‘파우 가규’와 ‘규리핀’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인상 깊었다. 2013-2014 시즌 최우수 신인 선수가 된 김종규는 이후 농구 월드컵과 인천 아시안 게임에서도 활약하며 국가대표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김종규는 그 이후에도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며 KBL 최고의 센터로 자리매김했으며, 향후 KBL을 대표하는 센터로서 장기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김종규: 원주 DB 프로미의 중심 선수로서의 성장

 

 2014-2015 시즌: 회복과 도약

 

2014-15 시즌, 김종규는 울산 모비스와의 첫 경기에서 아시안 게임 후유증이 우려되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전주 KCC와의 경기에서 13득점을 올리며 빠르게 반등을 시작했다. 이후 김종규는 유재학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본격적인 활약을 펼쳤다. 부산 KT전에서 22득점 10리바운드, 고양 오리온스전에서 14득점 2리바운드, 원주 동부전에서 17득점 6리바운드를 기록하며, 더 이상 단순한 골밑 자원에 그치지 않고 돌파, 포스트업, 훅슛, 중거리 슛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다채로운 공격력을 선보였다. 김종규는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으며 팀 성적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시즌 중 발목 부상으로 약 한 달 반 동안 결장한 후, 1월 15일 복귀전에서 다시 그 존재감을 드러냈다. 특히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27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이후 삼성과 KGC와의 경기도 승리로 이끌며 김종규의 가치를 입증했다.

 

 2015-2016 시즌: 도전과 어려움

 

2015-16 시즌에도 김종규는 여전히 안정적인 성과를 보여주었지만, 조 잭슨과의 맞대결에서는 비교적 어려운 경기를 치러야 했다. 시즌 초반부터 '인유어페이스'와 같은 강력한 방어를 당하며 기술적으로 많은 도전이 있었지만, 김종규의 기본기와 탄탄한 체력은 그를 여전히 KBL의 주요 센터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2016-2017 시즌: 부상과 회복

 

2016-17 시즌, 김종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 소집 없이 개인 훈련에 집중했다. 미국과 한국에서의 스킬 트레이닝과 체력 훈련을 통해 몸 상태가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상체를 강화하여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피지컬을 자랑했다. 그러나 시즌 초반 부상의 여파로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2월 3일 오리온스와의 경기에서 30득점을 기록하며 컨디션을 회복한 듯했으나, 안양 KGC와의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하면서 시즌을 조기에 마감해야 했다.

 

 2017-2018 시즌: 새로운 시작과 불안정성

 

2017-18 시즌, 김종규는 FIBA 아시아컵에서 주전 파워포워드로 활약하며 좋은 성과를 냈다. 비시즌 동안 현주엽 감독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며 체력과 기량에서 변화를 보였고, 개막 후에는 3점 슛을 던지는 등 더욱 다채로운 플레이를 시도했다. 하지만 부상과 조기 복귀를 반복하며 컨디션에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커리어 로우의 기록을 남기며 시즌을 마쳤다. 시즌 종료 후에는 구단과의 연봉 협상에서 불화가 있었고, 연봉 조정 신청을 통해 새로운 계약을 이끌어내기 위한 과정이 진행되었다.

 2018-2019 시즌: 전환점

 

2018-19 시즌, 김종규는 원래의 모습을 되찾으며 장신 외국인 선수의 신장 제한 속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개막 3경기에서 연속 더블더블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고, 이후 팀의 연승을 이끌며 3위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6강 플레이오프에서 20득점 10리바운드 이상의 활약을 펼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4강 진출을 위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전자랜드와의 4강에서 팀은 체력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스윕으로 패배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FA 계약과 원주 DB 프로미 이적

 

2019년, 김종규는 FA 시장에 나오게 되었다. LG는 12억 원의 연봉과 5년 계약을 제시했지만 협상은 결렬되었고, 김종규는 원주 DB 프로미로 이적했다. 12억 7,900만 원의 계약을 체결하며 새로운 도약을 시작한 김종규는 KBL의 대표적인 센터로서 미래를 이어가게 되었다. FA 협상 과정에서 LG와의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김종규는 창원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종규의 새로운 시작은 KBL 팬들에게 큰 관심을 모았다.

 

김종규는 KBL에서의 성장과 갈등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확립한 선수로, 이제 원주 DB 프로미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앞으로의 활약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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