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선수, 감독, 관계자

김기동 : FC 서울 감독,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5. 6. 30.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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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은 1972년 1월 12일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축구 감독입니다. 키는 171cm이며, 선수 시절에는 미드필더로 활약했습니다. 송악초등학교, 신평중학교, 신평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위덕대학교에서 사회체육학 학사를, 영남대학교 스포츠과학대학원에서 체육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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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경력은 1991년 포항제철 아톰즈에서 시작하여, 유공 코끼리/부천 SK(1993~2002)와 포항 스틸러스(2003~2012)에서 뛰었습니다. 국가대표팀에서는 1997년에 3경기를 소화했습니다.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는데,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대한민국 U-23 대표팀 코치를 역임했으며, 2016년부터 2019년까지 포항 스틸러스의 수석 코치로 활동했습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을 맡아 뛰어난 지도력을 보여주었으며, 2024년부터 FC 서울의 감독으로 부임하여 현재까지 팀을 이끌고 있습니다.

김기동

개인적으로 김기동은 1998년 12월 조현경과 결혼했으며, 아내 조현경은 1976년생입니다. 슬하에 딸 김하늘(1999년생)과 아들 김준호(2002년생)를 두고 있습니다. 선수 시절 등번호는 6번이었으며, 2013년에는 성남 일화 천마의 스카우트로도 활동한 바 있습니다.

 

김기동은 현재 FC 서울의 감독을 맡고 있는 축구 선수 출신 지도자입니다. 선수 시절 미드필더로 활약했으며, K리그 통산 501경기 출전으로 역대 필드 플레이어 출전 2위에 빛나는 K리그의 전설적인 인물입니다. 그는 최고령 선수 및 최고령 출전 기록도 보유하고 있습니다. 2011년 현역 은퇴 후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습니다.

감독으로서도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항 스틸러스 감독 시절인 2023년 FA컵 우승을 차지했으며, 2020년 K리그 감독상과 2023년 KFA 올해의 지도자상을 수상하며 지도력을 인정받았습니다. FC 서울 부임 첫 시즌에는 팀을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로 이끌며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팀의 문제점들을 해결하며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김기동 - 선수 경력

 

김기동은 축구 불모지인 당진시에서 신평중, 신평고 축구부의 창단 멤버로 축구를 시작한 무명 선수였습니다. 고교 졸업 후 1991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연습생으로 입단했지만, 당시 막강한 스쿼드에 밀려 2년간 2군에만 머물며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습니다.

1993년 유공 코끼리(現 부천 SK)로 이적하며 그의 축구 인생은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박성화 감독 밑에서 프로 데뷔 기회를 잡았고, 1995년 부임한 발레리 니폼니시 감독아래에서 재능을 만개했습니다. 니폼니시 감독은 김기동의 왕성한 활동량과 기본기를 눈여겨보고 그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정착시켰습니다.

김기동은 당시 K리그에 처음 도입된 존 디펜스와 패스워크의 중심에서 활약하며 팀을 이끌었고, 니폼니시 감독을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감독으로 꼽습니다. 1997년 무릎 수술로 잠시 이탈했지만, 1998년 복귀하여 이을용, 남기일 등과 함께 미드필더진을 구성하며 팀의 핵심이자 주장으로 활약했습니다. 2000년 리그 준우승에 기여했으며, 2002년에는 전 경기 무교체 출장으로 커리어 첫 특별상을 수상했습니다. 부천에서 K리그 통산 274경기 출전 기록을 세우며 구단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보유, 부천의 레전드 선수로도 평가받습니다.

 

2003년, 김기동은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로 복귀했습니다. 복귀하자마자 포항의 핵심으로 활약하며 2년 만에 주장으로 임명되어 리그 준우승을 이끌었습니다. 2004년 무릎 부상으로 은퇴까지 고려했지만, 새로운 감독에게 기회를 얻어 2007년 다시 주장직에 복귀했습니다. 2007년 K리그 7라운드 FC 서울전에서 통산 400경기 출장을 기록했고, 이후 대구 FC전에서는 통산 402경기 출장으로 프로 축구 통산 필드 플레이어 역대 최다 출장 기록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해 삼성 하우젠 K-리그 2007 우승을 이끌며 개인 커리어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비록 리그 MVP는 아니었지만, 리그 베스트 XI, 2007 윈저어워즈 축구대상 등을 수상하며 2007년 K리그 최고의 국내 선수임을 인정받았습니다.

2008시즌에는 30-30클럽에 가입했으며, 2008 하나은행 FA CUP 우승을 차지하며 2년 연속 우승을 경험했습니다. 2009시즌에는 K-리그 최고령 득점자가 되었고, 2009 AFC 챔피언스 리그와 2009 피스컵 코리아 우승을 거두며 데뷔 첫 더블을 기록했습니다. 2011년에는 500경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이며 연봉 삭감과 동시에 시즌 종료 후 은퇴를 발표했습니다. 2011년 10월 22일 전남 드래곤즈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출전하며 K-리그 필드 플레이어 최초 500경기 출전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했으며, 포항은 화려한 기념식으로 그를 예우했습니다. 2011 시즌 종료 후 은퇴를 발표했고, 2012년 3월 17일 성대한 은퇴식을 치렀습니다. 은퇴 이후에는 영국으로 축구 유학을 떠나 지도자 라이선스를 취득했으며, 2013년에는 U-22 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었습니다. 또한 포항 스틸러스 명예의 전당 '최초의 13인'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습니다.

국가대표 및 지도자 경력

 

김기동은 유공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1997년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었습니다. 1997년 10월 4일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 예선 최종예선 4차전 아랍에미리트전에서 데뷔전을 치렀으며, 총 3경기에 출전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 김기동은 2012년부터 자신의 모교인 당진 송악초등학교에 유소년 축구팀 '카파FC'를 창단하여 단장으로서 유소년 축구 육성에 힘썼습니다. 2013년에는 성남 일화 천마의 스카우터직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지도자로서 본격적인 길을 걸으며 현재 FC 서울을 이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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