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세(鄭大世, Jong Tae Se)는 북한의 전 축구 선수로, 1984년 3월 2일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났다. 정대세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의성군 출신이며, 동래 정씨 본관을 가지고 있다. 정대세는 180cm의 신장과 81kg의 체중을 지닌 스트라이커로서, 축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아왔다. 정대세의 학력은 아이치조선제2초급학교, 아이치조선중고급학교, 그리고 삿포로 클라크기념국제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조선대학교에서 학사를 취득했다. 정대세는 프로 선수로서 가와사키 프론탈레, VfL 보훔, 1. FC 쾰른, 수원 삼성 블루윙즈, 시미즈 S펄스, 알비렉스 니가타(임대), FC 마치다 젤비아 등 다양한 클럽에서 활약하였다. 특히, 정대세는 2006년부터 2011년까지 북한 국가대표팀에서 33경기 15골을 기록하며 팀의 일원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대세의 뛰어난 기량과 헌신적인 플레이는 많은 축구 팬들 사이에서 기억되고 있다. 사생활로는 부모님과 형 정이세가 있으며, 배우자 명서현과 두 자녀, 아들 정태주와 딸 정서아를 두고 있다. 정대세는 재외국민 2세로 병역 면제를 받았으며, 그간의 활발한 축구 활동을 통해 북한과 대한민국을 넘나드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선수로 평가받고 있다.
정대세: 재일 조선인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DAZN 해설위원
정대세(鄭大世, Jong Tae Se)는 재일 조선인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현재 DAZN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대세는 '인민 루니(People's Rooney)'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정대세의 무지막지한 돌파력에서 유래되었다. 이 외에도, 정대세의 팀 동료인 지윤남은 '로동메시'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일본에서는 팬티스타킹을 뒤집어쓴 강도 같은 외모 때문에 '팬티스타킹'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정대세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는 디디에 드록바이며, 정대세는 대한민국과 북한 양국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이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정대세는 양국에서 복수국적자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정대세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활약하며, 44년 만에 북한을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은 전설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정대세는 조선대학교 재학 중 J리그 진출을 위해 다양한 구단의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그 결과, 2006년 가와사키 프론탈레에 입단하게 되었고, 그곳에서의 첫 시즌 동안 114경기에서 42골을 기록하며 팀의 핵심 선수로 자리잡았다. 정대세의 뛰어난 활약은 2010년 월드컵에서 북한을 본선에 진출시키는 데 기여하였고, 이는 해외 여러 구단의 관심을 끌었다. 이후 정대세는 독일 분데스리가 2부 리그 소속인 VfL 보훔과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곳에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2012년에는 1. FC 쾰른으로 이적했지만, 클럽 내 갈등으로 인해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기를 하였다. 이후 2013년에는 K리정대세의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 합류하게 된다. 정대세는 북한 국가대표팀으로 뛰고 있지만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재외국민으로서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 정대세의 K리그에서의 활약이 기대되는 가운데, 과거 쾰른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현재 정대세는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서의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축구 팬들에게 다시 한 번 정대세의 재능을 선보이고 있다.
정대세: 2013 시즌의 도전과 변화
2013년, 정대세는 수원 삼성 블루윙즈 소속으로 AFC 챔피언스 리그 가시와 레이솔과의 경기에서 페널티킥 두 개를 실축하며 팀의 6-2 패배의 원흉으로 떠올랐다. 이 경기는 그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이후 정대세는 2024년 현재까지도 다른 팀 팬들에게 놀림받는 대상이 되었다. 두 개의 PK를 모두 자신이 날려버린 정대세는 다음 경기인 K리그 대구전에서 데뷔골을 신고했지만, 이어진 슈퍼매치에서 전반 시작 몇 분 만에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하는 불운을 겪었다. 수원은 후반 87분 라돈치치의 동점골로 패배를 면했지만, 정대세의 상황은 다소 암울했다.
이후 부산과의 경기를 징계로 결장한 뒤 대전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첫 두 골은 각각 홍철과 조지훈의 중거리슛을 살짝 방향만 바꿔 넣어 골키퍼를 벙찌게 만들며 정대세의 득점 감각을 증명했다. 2013 시즌 동안 정대세는 리그 23경기에서 10골 2도움을 기록하며 꾸준한 활약을 이어갔지만, 처음의 실축과 부진한 경기력은 그에게 계속해서 부담으로 작용했다.
2014년 시즌에 접어들며 정대세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시즌 초반에는 '인민 먹튀'라는 오명을 안으며 주전 스트라이커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지 못했다. 31라운드까지의 기록은 22경기 48슈팅 4골 1도움으로, 주전 원톱으로서의 저조한 성적은 수원 블루윙즈에게 큰 부담을 주었다. 팀 내 동료와의 불화와 부상 등 여러 심리적 요인이 그를 위축시키고 있었으나, 결국 28경기에서 7골 1도움을 기록하며 후반기에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골이 FC 서울의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진출을 도왔다는 점은 그에게 긍정적인 의미로 작용했다. 2015 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며, 정대세는 과거의 아쉬움을 씻어내기 위해 새로운 다짐을 하게 된다.
정대세: 국가대표 경력 및 개인사
1.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대세는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2010년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정대세가 대표팀에 합류한 초기에 강한 자존심으로 인해 팀원들과의 갈등이 존재했으며, 이는 정대세의 한국어 구사 능력이 남한 사투리를 바탕으로 하였고, 교포 특유의 어색함도 겹쳤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에도 불구하고, 동료 선수인 안영학이 커뮤니케이션의 다리를 놓아주면서 점차 팀에 적응하게 된다. 그러나, 정대세는 여전히 대표팀 내에서 소외되는 경험을 하였으며, 경기 중 세레모니에서 종종 홀로 남겨지는 일이 잦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 기자들은 그를 예의 바른 청년으로 평가했다.
정대세는 북한 대표팀의 공격 전술이 오직 역습에 의존함에도 불구하고, 정대세가 이끌어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게 되었다. 남아공 월드컵을 앞두고 정대세는 강팀과의 대결을 희망한다고 수차례 언급했으며, 결국 브라질,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이 속한 조에 배정받으면서 정대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대회 개막 직전, 정대세는 북한 선수들 중 드물게 영어와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어 외신 기자들의 인터뷰를 받았다. 2010년 6월 15일, 브라질과의 첫 경기에서는 세계적인 센터백인 루시우와 맞대결을 펼치며 정대세의 뛰어난 피지컬을 선보였고, 이로 인해 "인민 루니"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경기 중 정대세는 국가가 흘러 나올 때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화제가 되었으며, 이 장면은 뉴욕타임스의 월드컵 사진 10선에 선정되었다.
2010년 12월, 북한 정부에서 주는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으며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기쁨을 만끽하였다.
2. 2011년 AFC 아시안컵
2011년 AFC 아시안컵을 앞두고, 정대세는 북한을 위해 뛰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는 북한의 미숙한 행정 탓으로 인한 것이었다. 결국 팀을 설득하여 대표팀에 합류했으나, 대회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적을 거두었다. 북한은 이란, 이라크, 아랍에미레이트와 함께 D조에 속해 1무 2패로 12위로 탈락하였고, 정대세는 몸 상태가 좋지 않아 특별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이 대회 이후 정대세는 북한 국가대표팀과의 인연이 끊어졌다. 일각에서는 동료 홍영조와의 갈등 때문이라는 추측이 있었으나, 정대세는 그를 간접적으로 부인하며 북한 대표팀에 대한 가치의 부재와 K리그 수원 삼성의 이적 제안을 계기로 대한민국 여권을 재발급받았다고 밝혔다.
3. 개인사 및 국적 문제
정대세는 한국인 아버지와 조선적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어머니는 조선학교에서 교육받아 한국어에 능숙한 반면, 일본어에도 익숙하다. 정대세는 아버지의 국적을 이어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가졌지만, 북한 대표팀에 합류하면서 조총련을 통해 북한 국적을 취득하였다.
정대세는 두 개의 국적을 보유하고 있지만, 법적으로 이중국적자로 인정받지 않는다. 북한은 정대세를 자국민으로 취급하나, 대한민국은 정대세의 북한 국적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정대세는 복잡한 정체성을 갖게 되었고, 과거 블랙번 로버스 FC에서의 계약이 불발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하였다.
4. 논란
정대세는 K리그 올스타전 후보로 등록되었으나, "김정일을 존경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었다. 이는 기자의 유도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으나, 일부에서는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 아니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다. 결국 검찰에서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5. 은퇴 후 활동
2022년 은퇴 후, 정대세는 서울로 이사를 가고 여자 셀럽 풋살 리정대세의 감독으로 활동할 계획을 밝혔다. 2023년에는 일본의 OTT인 ABEMA에서 프리미어 리그 방송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일본과 서울을 오가며 경기를 중계하고 있다. 또한, 2024년 5월 29일에는 J2리그 몬테디오 야마가타 인스트럭터로 취임하였다.
정대세는 방송 활동 외에도, "골 때리는 그녀들" 프로그램의 감독으로도 참여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대세: 축구 스타의 다채로운 인생 이야기
정대세는 축구계에서 독특한 입지를 가진 선수로, 정대세가 걸어온 길은 단순한 선수의 경력을 넘어서 다양한 매력을 지닌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형 정이세도 한국 국적을 가지고 있으며, 그 당시 한국 내셔널리그에서 충주 험멜의 골키퍼로 뛰었으나 방출되었다. 이러한 배경은 정대세가 한국 축구와의 연관성을 더욱 깊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이다.
정대세는 매스컴과의 소통을 주저하지 않는 선수로 알려져 있다. 많은 축구 선수가 인터뷰를 기피하는 반면, 정대세는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다. 특히, 독일에서 뛸 당시 일본에서 자란 영향으로 일본인 선수들과의 친분이 두드러지며, 이들은 정대세와 함께 소셜 미디어에서도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박지성과의 친분도 유명하며, 맨유 경기 후 그를 만나 인사하는 모습이 종종 보도되곤 한다. 또한, 정대세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자주 출연하여 그만의 유머와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은퇴 이후에는 방송인으로서의 경력을 이어가며, 축구 관련 예능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정대세의 감성은 눈물로도 잘 드러난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국가 연주 도중 눈물을 흘린 장면은 많은 이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정대세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눈물을 보이는 등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이런 모습은 정대세가 사람들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가게 하는 요소 중 하나이다.
정대세는 언어 능력 또한 뛰어난 인물이다. 한국어, 일본어, 영어, 포르투갈어, 독일어 등 총 5개 언어를 구사하며, 정대세의 한국어는 남한 지역의 방언에 가까운 재일 한국인의 말투로 알려져 있다. 또한, 정대세는 취미로 디제잉을 즐기며, 음악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대세의 개인적인 삶도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는다. 정대세는 2013년 민속촌 벨튀 코너에서 팬들과의 깜짝 만남을 가지기도 했으며, 현재는 아내와 함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아내는 SBS 프로그램 '골 때리는 그녀들'에 활발히 출연하고 있으며, 이 부부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특히 아들은 축구 교실에서 훈련하며 아버지의 길을 따르고 있지만, 축구 선수로서의 길이 쉽지 않음을 몸소 경험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 김치 사업을 시작하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정대세는 북한 국가대표팀의 에이스인 홍영조와의 불미스러운 일화로 인해 북한과의 인연이 끊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대세의 삶은 그 어떤 편견이나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정대세는 축구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영향력을 미치며, 정대세의 다채로운 인생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정대세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