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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민 : 삼성 라이온즈 No.45 선수.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4. 10. 24.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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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민(林昶暋)은 1985년 8월 25일 광주광역시 남구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프로야구 선수이다.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No.45로 활약하고 있으며, 임창민의 포지션은 중간 계투 및 마무리 투수이다. 임 선수는 183cm의 신장과 94kg의 체중을 가지고 있으며, 오른손으로 투타를 구사한다. 임창민은 연세대학교에서 체육교육학을 전공하며 기초를 다졌고, 2008년 현대 유니콘스에 2차 2라운드(전체 11번)로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임창민의 경력은 2008년부터 시작된 여러 구단에서의 활동으로 다양하다. 임창민은 우리-서울-넥센 히어로즈에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뛰었으며, 이후 NC 다이노스(2013~2021)와 두산 베어스(2022), 그리고 키움 히어로즈(2023)에서도 활동했다. 2024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총 8억원의 계약을 체결했다. 임창민의 병역 의무는 경찰 야구단에서 이행하였으며, 2009년 12월 17일부터 2011년 10월 8일까지 복무하였다. 임창민 선수는 현재 아내와 함께 살고 있으며, INTJ 성격 유형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임창민의 등장곡인 《아카자 테마곡》은 팬들에게 친숙하다. 리코스포츠에이전시 소속으로, FILA의 후원도 받고 있는 임창민은 앞으로의 시즌에서 뛰어난 성과를 기대하게 만드는 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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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창민: 삼성 라이온즈 소속 우완 투수의 선수 경력

 

임창민은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우완 투수로, 임창민의 선수 경력은 다양한 경험과 발전의 과정으로 가득 차 있다. 고교 시절, 동성고에서 동기생 김주형과 함께 활약하며 2003년 청룡기 우승에 기여하였다. 당시 결승에서는 피로가 누적되어 상대에게 맞기는 했지만, 팀은 순천효천고의 김수화도 피로로 무너져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창민은 주목받는 투수가 아니었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야구 경력을 이어갔다.

 

연세대학교 야구부에서는 2000년대 중반 에이스로 자리잡으며 2006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한양대학교를 결승에서 꺾고 우승,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였다. 2007년에는 2008 베이징 올림픽 2차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며 더욱 주목받았다. 비록 구속이 빠르지 않았지만, 낙차가 큰 커브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그 결과, 2008년 신인 지명을 앞두고 KIA 타이거즈의 1차 지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KIA는 전태현을 1차 지명했다. 대신, 임창민은 현대 유니콘스의 2차 2순위로 지명받아 계약금 7,000만 원에 입단하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 현대가 해체되며 히어로즈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프로 무대에서는 처음부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8년 1군 무대에 나가지 못했으며, 2009 시즌에는 단 1이닝 4자책점을 기록했다. 이 후 경찰청에 입대하여 2010년 퓨처스리그 올스타에 선발되기도 하였다. 2012년 제대 후 넥센 히어로즈에 복귀했으나, 퓨처스리그에서만 뛰어야 했다. 전반기 동안 준수한 성적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1군에는 올라가지 못했고, 결국 후반기에 겨우 1군에 콜업되었지만 고작 4이닝만 던지고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

 

2013 시즌 종료 후 11월 18일, 김태형과 차화준과 함께 NC 다이노스로 트레이드되었고, 이는 NC의 창단 첫 트레이드였다. 2013년 개막전 엔트리에는 빠졌으나, 4월 말부터 1군에 합류해 안정적인 불펜 요원으로 자리잡았다. 5월 16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데뷔 첫 승을 기록하며 주목받았다. 6월 6일에는 마무리 투수로 첫 등판하여 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성과를 내었고, 후반기에는 필승 셋업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9월부터는 홈런을 맞는 일이 잦아져 혹사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시즌을 통해 NC의 불펜 중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2014 시즌에는 초반 기복이 있었으나 후반기에는 필승조 역할로 자리잡았다. 2015 시즌에는 독감으로 스프링캠프 중도하차하였지만, 시즌 중 활약이 두드러졌다. 마무리 투수로서의 성과를 내며 팀 역사상 최초로 30세이브를 기록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16년과 2017년 시즌을 거치며 성장을 계속하였고, 2019 시즌에는 토미 존 수술을 받은 후 재활 과정을 거쳐 1군에 복귀하였다.

 

2020 시즌 이후, 2021 시즌을 마친 임창민은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였고, 이어 2022년에는 키움 히어로즈와 계약하였다. 이로써 2012년 이후 10년 만에 친정 팀에 복귀하게 되었다. 2023 시즌을 마친 임창민은 생애 첫 FA 자격을 얻어 협상이 진행되었고, 삼성 라이온즈와의 관계도 주목받고 있다. 임창민의 커리어는 다양한 경험과 도전을 통해 이어지고 있으며, 향후 임창민의 행보가 기대된다.

 임창민: KBO 최다 기록을 향한 여정

 

임창민은 KBO 리그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이룬 투수로, 임창민의 역대 KBO 기록은 선수로서의 여정과 성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임창민은 2008년에 KBO 리그에 발을 디딘 이후, 여러 팀에서 활약하며 꾸준한 성장을 보여주었다. 임창민의 통산 기록은 다음과 같다: 경기수 547, 승 29, 패 30, 세이브 123, 홀드 85, 이닝 551⅓, ERA 3.75, 피안타 507, 피홈런 56, 볼넷 251, 사구 25, 탈삼진 546, WHIP 1.37, ERA- 79.92, sWAR 9.67. 이 통계들은 임창민이 KBO 리그에서 경력을 쌓아오며 성취한 다양한 기록을 담고 있다. 특히, 세이브 부문에서 123세이브는 리그 내에서 임창민의 중요성을 입증한다.

 

임창민의 역대 KBO 기록은 임창민이 어떤 팀에서 어떤 방식으로 활약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임창민의 경력 초반인 2009년부터 2012년까지는 여러 도전과 시련이 있었으나, 2013년 NC 다이노스에서 본격적인 경기를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특히, 2015년과 2016년에는 각각 31세이브와 26세이브를 기록하며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임창민은 2020년에도 여전히 7승 2패의 성적을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을 유지하고 있다.

 

임창민의 커리어는 KBO 리그 역사에 깊은 흔적을 남기며, 앞으로의 행보에도 많은 기대를 모은다. 임창민의 기록은 임창민이 KBO에서 어떤 전설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했는지를 잘 나타내며, 임창민의 경력은 현재진행형으로 계속 발전하고 있다.

 임창민: 플레이 스타일과 명언들

 

임창민은 KBO 리그에서 뛰어난 우완 불펜 투수로 자리잡았으며, 임창민의 플레이 스타일은 정교함과 효율성을 바탕으로 한다. 임창민의 포심 패스트볼은 최고 150km/h, 평균 142km/h로, 상대적으로 특출나지 않지만, 뛰어난 컨트롤과 간결한 투구폼 덕분에 안정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또한, 131km/h의 슬라이더와 스플리터는 임창민의 구위에 큰 도움을 주며, 통산 K/9이 9.0을 넘는 기록을 세울 정도로 헛스윙을 유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임창민은 주자를 쌓아놓고 경기를 마무리하는 날도 있지만, 2017년 기준으로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피안타율이 2할대 초반에 불과해 그 능력이 미스터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임창민의 경력 초반에는 체력 저하가 후반기에 빠르게 오는 경향이 있었고, 이로 인해 전반기에 쌓은 기록을 후반기에 잃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특성과 함께 임창민은 여러 번의 재활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한계를 극복해왔다. 임창민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한 언변으로 주목받았으며, 경기 중의 압박감을 잘 다루고 있다.

 

임창민의 명언은 프로선수로서의 자세를 잘 드러내고 있다. “세이브는 투수 개인이 아닌 팀 기록이니까요”라는 발언은 개인의 성과보다 팀의 승리가 중요하다는 임창민의 철학을 나타낸다. 임창민은 또한 “올 시즌에도 나만 잘하면 된다. 블론 세이브를 해도 부담은 없다”고 언급하며 자신의 역할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임창민의 말은 단순한 수치에 집착하지 않고, 팀의 일원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021년 두산으로 이적할 때 임창민은 “팀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나가는 선수가 되고 싶고, 그만큼 팀에 많은 공헌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밝히며 새로운 도전에 대한 포부를 드러냈다. 특히 2024년 삼성으로 이적한 후 “지금 여러 매체에서 삼성을 5강 전력에서 제외했더라. 그게 참 기쁘다”라고 언급한 것은 임창민이 팀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임창민은 KBO 리그에서 특별한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일 뿐만 아니라, 임창민이 남긴 명언들은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임창민의 경력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앞으로의 행보에도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임창민: 별명, 플레이 스타일, 그리고 사회적 기여

 

임창민은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에서 활약하며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는 KBO 리임창민의 우완 불펜 투수이다. NC 팬들이 붙인 별명 중 '임사장'과 '임변태'는 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임사장'은 한때 분식회계를 잘해 분식집 사장이라는 조롱의 의미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긍정적인 의미로 바뀌었다. 반면 '임변태'는 마무리 상황에서 주자를 쌓아놓고 세이브를 기록하는 경우가 잦아 붙여진 별명으로, 임창민의 독특한 플레이 스타일을 나타낸다. 또한, 진한 쌍꺼풀과 묘한 눈빛은 임창민의 매력을 한층 더 부각시키며, 두산 이적 이후에는 팀 동료 장원준의 별명에서 따온 '에로'라는 이름도 생겼다.

 

임창민은 미남형 외모로, 팬들에게는 티베트모래여우와 유사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임창민의 쌍꺼풀과 진한 눈매는 인상적인 외모로, 영화 '크로우즈 제로'의 배우 야마다 타카유키와도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터뷰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명확히 전달하는 임창민은 재활 과정을 통해 느낀 감정과 사회적 이슈에 대한 깊은 고민을 드러내며,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2019년 삼성창원병원에 1,000만원을 기부했다. 이는 임창민의 인간적인 면모를 잘 보여준다.

 

팬 서비스에도 힘쓰는 임창민은 히어로즈 2군 시절부터 사인 요청에 적극 응대해왔으며,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했던 2019년에도 팬들과 자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임창민의 헌신은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삼성 입단 이후에도 이러한 모습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임창민은 KBO의 사회공헌사업에서 대한적십자사 홍보대사로도 활동하며, 선수로서의 책임감을 다하고 있다.

특히 임창민은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도 '임사장'이라는 캐릭터로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임창민은 뛰어난 투구 능력을 지닌 캐릭터로, 게임 내에서 다양한 덱에서 활용되며 많은 유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러한 성과는 임창민이 팬들과의 연결고리를 더욱 강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임창민의 개인사에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다.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해태 타이거즈의 팬이었던 임창민은 초등학교 시절 이종범을 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 꿈은 2023년 이종범의 아들 이정후와 한 팀에서 뛰면서 더욱 현실화되었다. 또한, 임창용과의 선후배 관계는 임창민이 어린 시절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우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임창민은 투구 스타일과 멘탈 관리에 있어서 손민한 코치의 지도를 많이 받았다고 전하며, 임창민의 훈련 과정에서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최근에는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하는 자세가 더욱 두드러지며, 은퇴 후에는 코치로서 후배들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임창민의 매력은 경기장에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여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임창민은 팬들에게 진정한 영웅으로 남아 있으며, 임창민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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