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일언(崔一彦, Choi Il Eon)은 일본 야마구치현 산요오노다시에서 태어난 한국인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1961년 7월 27일에 태어난 그는 177cm, 80kg의 신체를 가진 우투우타 투수로 활동했다. 고등학교 시절 일본에서 유학하며 시모노세키상고와 센슈대학교를 거쳐 1984년, 해외교포로서 OB 베어스에 입단하면서 한국 프로야구에 발을 들였다. 이후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활동하며 1991년과 1992년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일원으로도 뛰었다.
선수 생활을 마친 후, 최일언은 지도자로서 경력을 쌓았다. 1993년부터 2003년까지 OB 베어스(현재의 두산 베어스) 1군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그 후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등 여러 팀에서 투수코치로 활약했다. 특히, NC 다이노스에서는 2017년부터 1군 수석코치로 활동하며 팀의 전반적인 투수진을 이끌었다. 2019년부터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투수코치로도 활약하며 국제 대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LG 트윈스에서 1군 투수코치와 투수 인스트럭터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2025년부터는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으로 임명될 예정이다. 최일언은 한국 야구에서 오랜 경력을 자랑하며, 선수로서와 지도자로서 모두 중요한 기여를 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최일언: KBO 리그의 투수 코치이자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최일언은 KBO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낸 전직 투수이자,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약 중인 야구 지도자이다. 재일교포 출신으로 일본식 이름은 '야마모토 가즈히코'(山本一彦)이며, 1984년 OB 베어스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하여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 등에서 활동한 후, 지도자로서도 KBO 리그와 국가대표팀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그동안 한국 야구의 발전에 기여한 유능한 투수 코치로 널리 알려져 있다.
최일언은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그가 목표로 삼았던 고시엔에서의 경기를 통해 야구에 대한 열정을 키운 그는, 센슈대학교 4학년 시절 사회인 야구팀을 통해 OB 베어스에 입단하게 된다. 1984년 OB 베어스에 입단한 최일언은 첫해부터 두각을 나타내며, 1986년에는 19승 4패, 방어율 1.58로 뛰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특히 해태 타이거즈와의 상대전에서 13연승을 기록하며 '해태 킬러'로도 이름을 알렸다. 그는 강력한 투구와 변화구 능력을 바탕으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중요한 투수로 자리매김했다.
선수 은퇴 후, 최일언은 다양한 팀에서 투수 코치로 활약하며 KBO 리그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OB 베어스를 시작으로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NC 다이노스, LG 트윈스 등에서 코치로 활동하며 많은 유망 투수들을 키워냈다. 특히, OB-두산 베어스에서의 투수 코치로서는 박명환, 진필중 등 많은 우수한 투수들을 배출했으며, 2000년대 중반 KBO 리그의 3대 투수 코치로 꼽히기도 했다. 또한, 그는 국가대표팀의 투수코치로서도 활약하며, 한국 야구의 국제적인 성과에도 기여했다.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며,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최일언은 현장에서의 뛰어난 지도력과 경험으로, 한국 야구계에서 중요한 인물로 계속해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최일언, NC 다이노스부터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까지 - 그의 여정과 논란
최일언은 KBO리그에서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투수코치로, 여러 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투수진의 재건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그가 처음 프로에서 코치로서 두각을 나타낸 곳은 NC 다이노스였다. 2012년부터 NC 다이노스에 합류한 최일언은 팀의 투수코치로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2013년 NC 다이노스의 선발진은 리그 내에서 상위를 차지할 정도로 강력했으나, 불펜진의 부진으로 고심했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일언은 비난을 받기보다는 불펜의 발전을 이끌어내며 팀을 경쟁력 있는 팀으로 만들었다.
NC 다이노스에서의 코칭 경력
2014년부터 최일언은 NC 다이노스 불펜의 재건에 집중했다. 김진성, 원종현, 손정욱 등 다양한 자원을 발굴하며, 불펜을 리그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또한, 그가 직접 지도한 선수들이 성장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최일언은 뛰어난 구종 전수 능력을 가진 코치로 평가받았다. 커브, 체인지업, 포크볼 등을 선수들에게 전수하며 그들의 투구 패턴을 확립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불펜진의 혹사 논란은 최일언에게 끊임없는 비판을 안겨주기도 했다. 특히 2015년과 2016년, NC 불펜 투수들이 과도한 이닝 소화와 잦은 등판으로 부진을 겪으면서, 투수들의 체력 관리 문제가 논란을 일으켰다. 최일언은 "3연투를 막았다"며 혹사를 방지하려 했다고 주장했지만, 이닝 수와 투구 수를 고려한 더 세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LG 트윈스로의 전향
2018년, 최일언은 LG 트윈스의 투수코치로 합류했다. LG 트윈스는 2017년 한 해 불펜진의 부진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최일언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그는 취임 후, 불펜진을 재정비하며 팀의 투수진을 크게 개선시켰다. 특히, 이우찬을 불펜에서 선발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팀의 승리 요정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진해수와 고우석 등 주요 투수들의 성장을 이끌어내며 투수진의 안정성을 높였다.
그러나 그의 LG에서의 코칭도 논란의 여지가 있었다. 최일언은 계속해서 불펜 투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었지만, 고우석과 정우영의 과도한 등판으로 혹사 논란이 다시 일었다. 2020년 시즌에는 고우석과 정우영이 잦은 등판으로 체력적인 한계에 도달하며 부진을 겪었고, 그로 인해 최일언은 여전히 투수 기용에 대한 비판을 받았다.
국가대표팀 코치로서의 역할
최일언은 2019년부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투수코치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한화 이글스 단장으로 선임된 정민철의 후임으로 대표팀에 합류한 최일언은 2019 WBSC 프리미어 12 대회를 시작으로 2021 도쿄 올림픽,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까지 다양한 국제 대회에서 코칭을 맡았다.
하지만 최일언의 국가대표팀 코치로서의 활동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21 도쿄 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은 동메달 결정전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패하면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고, 이는 최일언을 포함한 코칭스태프의 지도력 부족을 지적하는 목소리로 이어졌다. 특히, 그는 선수들의 훈련 태도와 전력 분석에 대한 문제를 외면한 채 선수들에게 과도한 요구를 한 것으로 비판받았다. 선수들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쉬어도 안 된다'는 과도한 훈련을 강요한 점은 야구 팬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삼성 라이온즈로의 이동과 미래
2024 시즌 종료 후, 최일언은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그는 이미 NC와 LG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삼성의 젊은 투수들에게 필요한 기술적 조언을 아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삼성 라이온즈는 최근 몇 년간 투수진이 큰 변화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최일언의 투수코칭 능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총평
최일언의 경력은 다채롭지만 그만큼 논란도 많았다.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에서의 성과는 높이 평가받지만, 혹사 문제와 투수 기용에 대한 비판은 그를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슈로 만들었다. 그가 맡은 팀의 투수들이 고전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의 코칭 아래 많은 투수들이 성장하고, 젊은 선수들이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앞으로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활동과 국가대표팀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가 어떤 변화를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최일언: OB/두산 시절부터 LG, 삼성까지, 그리고 투수코치로서의 길
최일언, 그는 단순한 투수가 아닌, 한국 야구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자리잡은 인물이다. OB 베어스와 LG 트윈스를 거쳐 삼성 라이온즈에서까지 활약하며, 선수로서도 큰 족적을 남겼고, 이후 투수코치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야구 인생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1. OB 베어스 시절, ‘일언매직’의 시작
최일언은 1984년 OB 베어스에서 첫 발을 내딛으며 프로 선수로서의 길을 걸었다. 그의 첫 시즌 성적은 37경기에서 167⅔이닝을 소화하며 9승 6패, 방어율 2.84를 기록하는 등 뛰어난 기량을 보여주었다. 그 해, 1.25의 WHIP(이닝당 출루 허용)을 기록하며, 투수로서의 성숙도를 드러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야구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은 바로 1986년 시즌이었다. 그 해 그는 221⅔이닝을 던지며 19승을 거두고, 방어율 1.58로 리그 1위를 기록하며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 이 시즌은 단순한 수치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투수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하며, OB 베어스의 에이스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 LG 트윈스, 그리고 ‘일언매직’의 출발
1990년 시즌, LG 트윈스에서의 짧은 시간 동안 최일언은 투수로서의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그가 LG 트윈스 유니폼을 입고 선발로 나온 개막전에서 그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했다. 바로 LG 트윈스라는 이름 아래 첫 선발 등판을 한 것이다. 비록 성적은 3승 2패에 그쳤지만, 이때의 첫 등판은 그의 선수로서의 중요한 이정표였다.
그의 별명인 '일언매직'은 LG 트윈스에서 시작되었다. '일언'이라는 발음이 '이런'과 유사해 팬들 사이에서 ‘이런매직’이라는 애칭이 붙기도 했다. 그만큼 그의 투구는 관중들에게 마법처럼 느껴졌고, 그 시절 LG 팬들에게는 그 어떤 투수보다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3. 삼성 라이온즈에서의 재도약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한 후, 최일언은 1991년 32경기에서 9승 6패를 기록하며 다시 한번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는 1991년 시즌, 96⅔이닝을 던지며 방어율 4.47을 기록했고, WHIP도 1.58로 안정적인 성적을 남겼다. 이후에도 그는 꾸준히 투수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며 삼성의 마운드를 지켰다.
그러나 그가 삼성에서 뛰었던 1992년에는 부상 등의 문제로 성적이 다소 저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일언은 KBO에서 통산 240경기, 1,115⅓이닝을 기록하며, 78승 57패 11세이브라는 성적을 남겼다. 그의 통산 방어율 2.87은 그가 얼마나 안정적인 투구를 펼쳤는지를 보여준다.
4. 투수코치로서의 전환점
선수로서의 길을 마친 후, 최일언은 투수코치로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부터 그는 여러 팀에서 투수코치로 활동하며, 투수들의 성장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LG 트윈스에서 투수코치로 활약하며 '일언매직'의 전통을 이어갔다. 그가 LG에 합류한 후, 팀의 투수진은 눈에 띄게 향상되었고, 많은 젊은 투수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최일언은 뛰어난 투수 기술 지도뿐만 아니라, 선수 개개인의 특성을 이해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훈련을 제시하는 능력으로 평가받았다. 그가 LG에서 활약하는 동안, 구원진의 ERA가 크게 개선되었고, 이우찬, 정우영, 고우석 등 젊은 투수들이 강력한 성적을 남겼다.
5. 유머와 인간적인 매력
그의 코칭 스타일은 단순히 기계적인 훈련에 그치지 않았다. 최일언은 선수들과의 소통을 중시하며, 유머와 인간적인 면모로 팀 내 분위기를 이끌었다. 특히, OB 시절 김인식 감독과의 일화는 그를 잘 보여주는 예시다. 김인식 감독이 투수를 교체하려 하자, "일언아~"라고 불렀고, 최일언 코치는 이를 "일어나"로 잘못 이해해 덕아웃의 선수들이 일어나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이는 후에 스포츠 조선에서 소개되며, 그의 유머감각과 소통 능력이 돋보이는 에피소드로 회자되었다.
6. 불펜과 혹사 논란,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
최일언은 투수코치로서 뛰어난 지도력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경력에서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불펜 투수들의 혹사였다.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에서 불펜진을 이끌며 팀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지나치게 투수들을 기용하는 방식이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고우석과 정우영 같은 투수들이 지나치게 많은 경기에 등판하면서 부상과 체력 저하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일언은 선수들을 ‘혹사’보다는 ‘믿고 키운다’는 철학으로 임했으며, 그의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자세는 많은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팬들 사이에서는 그가 더 이상 과중한 투수 기용을 개선하지 않은 점에 대한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다.
7. 최일언의 유산
최일언의 야구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이다. 선수 시절 그는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후배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고, 투수코치로서도 많은 성과를 남겼다. 그가 남긴 유산은 단지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한국 야구에서 중요한 인물로, 투수와 감독, 코치, 선수로서 모두 영향을 미친 존재로 기억될 것이다.
오늘날 그의 이름은 단순히 그가 이룬 성적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일언매직'이라는 말 속에는 그가 야구인으로서 걸어온 길, 그가 남긴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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