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준(李昊俊)은 대한민국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1976년 2월 8일에 전라남도 광주시 동구에서 태어났다. 이호준은 광주중앙초, 광주충장중, 광주제일고를 거쳐 호남대학교에서 스포츠레저학을 전공하며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94년 고졸로 해태 타이거즈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 야구 생활을 시작한 이호준은 1994년부터 2000년까지 해태에서 활동한 후, SK 와이번스와 NC 다이노스에서도 활발한 활약을 펼쳤다. 이호준의 포지션은 주로 투수였으나, 1루수와 지명타자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였다. 이호준은 2018년 이후 지도자로서의 경력을 쌓아가기 시작하였으며, 요미우리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를 시작으로 NC 다이노스와 LG 트윈스의 1군 타격코치를 역임했다. 2024년에는 LG 트윈스의 수석코치로 임명되었으며, 2025년부터는 NC 다이노스의 감독으로서 팀을 이끌 예정이다. 이호준은 2025년부터 2027년까지 총 14억 원의 계약을 체결하였으며, 첫 해 연봉은 3억 원으로 책정되었다.
이호준은 가족과 함께하는 소중한 시간을 갖고 있으며, 배우자와 세 자녀를 두고 있다. 이호준은 불교에서 천주교로 신앙을 바꾸었고, 세례명은 프란치스코이다. 이호준의 프로 야구 선수 시절에는 "You're my hero"와 "아빠의 청춘"과 같은 응원가가 많은 팬들에게 사랑받았으며, 이호준은 한국 프로 야구 선수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며 리더십을 발휘한 바 있다.
이호준(李昊俊)은 아마추어 시절부터 프로 야구계에서 독특한 이력을 남긴 인물로, 이호준의 경력은 많은 이들에게 기억될만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93년 말, 고졸 선수 스카우트 문제로 인해 프로 야구와 대학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이 시기, 이호준은 연세대학교에 가등록 상태로 있었으나, 해태 타이거즈의 스카우트 김경훈이 그를 계약하기 위해 연세대 숙소에 잠입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대학 팀들은 스카우트 금지 결정을 내렸으나, 이는 실질적으로 시행되지 않았고, 결국 1996년 말에 프로 출신들에게 아마추어 야구 지도자 자리가 개방되면서 사실상 폐기되었다.
이호준의 중고교 시절은 순탄치 않았다. 이호준은 가출과 합숙소 탈출을 자주 경험했으며, 프로에 입단한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이 지속되었다. 이호준의 아버지는 경찰이었으며, 자주 집을 나가던 이호준을 야구 방망이로 패기도 하고 달래기도 하였다. 아버지는 이호준이 프로가 된 이후에도 수원의 한 중국집으로 가출한 사건을 겪으며, 아들에게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이호준은 아버지의 강한 모습 뒤에 숨겨진 약함을 깨닫고 반성의 계기를 가졌다. 이러한 가족과의 갈등은 이호준의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프로 경력에서 이호준은 해태 타이거즈에서 처음 시작하였다. 이호준은 투수로서 입단했으나 부상의 여파로 1996년에는 타자로 전향하게 되었다. 전향 첫 해에는 눈에 띄는 성적을 내지 못했으나, 1997년부터 타격 코치 김성한과 함께한 강도 높은 훈련을 통해 빠른 성장을 이루었다. 1998년 시즌에는 4번 타자로 발돋움하며 팀의 핵심 타자로 자리 잡았고, 이후 SK 와이번스에서 더욱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이호준은 2002년과 2003년에는 각각 26홈런과 36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중심 타자로 자리매김하였고, 2004년에는 타점왕의 영예를 안았다. 그러나 2008년에는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쉬면서 많은 아쉬움을 남겼고, 결국 2009년에는 팬들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이호준은 끊임없이 변화하며 프로 야구 선수로서의 입지를 다져갔다.
이호준: NC 다이노스 시절
이호준은 NC 다이노스에서의 활약으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SK 와이번스에서의 첫 번째 자유 계약 선수(FA) 시절 먹튀의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이호준은 오히려 팀의 중심 타선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었다. 주장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며 젊은 선수들을 잘 이끌어, 팬들로부터 '호부지'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13 시즌
이호준은 2013 시즌에 126경기에 출전하여 442타수 123안타, 20홈런, 87타점을 기록하며 .278의 타율을 남겼다. 영입 당시의 반신반의했던 시선에도 불구하고, 이호준은 팀의 고참으로서 중심 타선에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홈런과 타점 부문에서 각각 리그 7위, 6위를 기록하며 팀에 기여했다.
2014 시즌
2014년 시즌 개막전에서 이호준은 팀의 첫 그랜드슬램을 기록하며 4타점을 올렸으나, 팀은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패배했다. 이후 한동안 부진했으나 5월 7일 넥센전에서는 5타수 4안타, 2홈런, 7타점으로 맹활약하며 팀의 기세를 올렸다. 이호준은 이날 NC 창단 사상 첫 백투백투백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고, 6월 17일에는 통산 1000타점을 달성했다. 시즌 마지막에는 주장직을 이종욱에게 넘기게 되었다.
2015 시즌
2015년 시즌에 이호준은 타율 .336(8위), 9홈런(8위), 41타점(1위)을 기록하며 NC의 타선을 이끌었다. 5월 30일 KIA 타이거즈전에서는 통산 300홈런 달성을 눈앞에 두었고, 6월 11일에는 타율 .320, 홈런 14, 타점 64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이어갔다. 9월 15일에는 만루 홈런을 기록하며 NC 다이노스가 KBO 역사상 최초로 한 시즌에 클린업 트리오가 100타점을 넘긴 팀이 되었다. 최종 성적은 .294, 24홈런, 110타점으로 나타났다.
2016 시즌
2016년, 이호준은 7억5000만원에 계약하며 선수협회 새 회장으로도 취임했다. 시즌 초반부터 활발한 성적을 이어갔고, 6월 19일에는 통산 1300타점을 달성했다. 그러나 부진한 시기를 겪기도 하였고, 8월 1일자로 1군에서 말소되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298, 21홈런, 87타점으로 여전히 뛰어난 성과를 기록했다.
2017 시즌 및 은퇴
2017년, 이호준은 구단 신년회 자리에서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시즌 초반 부상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7월 9일 두산전에서 3타수 3안타를 기록하며 팀에 기여했다. 9월 30일 은퇴 경기에서는 5타수 2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기분 좋게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이호준의 경력은 KBO 리그에서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으며, 이호준은 팀의 리더로서, 그리고 한 선수로서 깊은 인상을 남겼다. NC 다이노스에서의 이호준의 활약은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다.
이호준: 프로 야구의 전설
이호준은 한국 프로 야구에서 24년간 선수 생활을 하며 화려한 커리어를 쌓았다. 이호준의 누적 스탯은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7년 SK 와이번스의 우승과 2008년의 야구 붐 이후, 이호준은 팬들 사이에서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FA 계약 이후 부상과 부진으로 인해 이호준의 이미지는 "먹튀"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특히, 이호준의 전성기 활약을 경험하지 못한 팬들에게는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호준은 SK 와이번스의 창단 초기부터 간판 타자로 활약하며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FA 자격을 얻었을 당시, 이호준의 기량은 여전히 뛰어나 팬들은 그를 지키기 위해 서명 운동을 벌이기까지 했다. 그 결과, 이호준은 예상을 훨씬 웃도는 금액의 FA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호준의 타격 폼은 많은 이들에게 인상 깊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역대 홈런 순위 9위, 타점 순위 8위에 이름을 올린 이호준은 지속적인 성과를 보여주었다. 특히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후에는 기량이 다시 반등해 2015년에는 한국 프로 야구 역사상 8번째로 300홈런을 달성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호준은 최고령 300홈런 기록을 세우며 야구 팬들의 기억에 남는 선수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호준은 포스트시즌에서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정규 시즌에서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으나 플레이오프에서 극도의 부진을 겪었다. 특히, 7번의 플레이오프에서 24경기에 출전하여 .174의 타율을 기록한 것은 이호준의 경력에 아쉬운 부분으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플레이오프에서는 높은 성적을 기록하며 "로또준"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프로 선수 생활 동안 이호준은 단 한 번도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다. 이는 이호준의 탁월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더 뛰어난 선수들이 경쟁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NC 다이노스에서는 팀의 주장을 맡아 후배들과의 소통을 통해 팀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호준은 선수 시절 다양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를 들어, 손톱을 깎으면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고 믿고 이를 경기가 없는 날에만 하기도 했다. 또, 고향 팀인 KIA 타이거즈에 대한 애정이 깊어 그들의 연패를 끊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한 적도 있다.
이호준은 2012년 FA를 통해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이후, 중요한 순간마다 SK 와이번스에게 비수를 꽂으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호준의 은퇴 이후에도 팬들에게 남긴 긍정적인 이미지는 감독으로 복귀한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호준은 후배 선수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인물로 기억되고 있으며, 이호준이 직접 지도한 장현석 선수와의 일화는 이호준의 따뜻한 인성을 잘 보여준다. 이호준의 활약은 한국 프로 야구 역사에서 잊지 못할 순간들을 만들어낸 전설적인 선수로 남을 것이다.
이호준: 야구와 인생의 다채로운 여정
이호준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로, 이호준의 경력은 단순한 선수 생활을 넘어서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호준은 선수 시절, 동료인 이진주(속칭 펄녀)를 내쫓는 역할을 맡으며 '34억짜리 구단 경비원'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는 단순한 비하가 아니라 팀의 화합과 케미스트리를 지키기 위한 중대한 역할로 해석될 수 있다. 이호준은 팀의 기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며 후배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호준의 노력 덕분에 젊은 선수들은 과도한 외부 활동에 휘둘리지 않고, 야구에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호준은 NC 다이노스로 이적한 후에도 베테랑으로서 팀의 규율과 결속력을 다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호준이 한국어 욕설을 배우며 심판 판정에 불복한 찰리 쉬렉 사건에서도 이호준의 영향력이 드러났다. 이호준의 지도 아래, 후배 선수들은 그를 존경하며 따르는 모습을 보였고, 이는 이호준이 선수단 내에서 군기반장 역할을 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생활에서도 이호준은 여전히 많은 관심을 받는다. 아내인 홍연실 씨는 뛰어난 미모로 알려져 있으며, 많은 팬들은 그녀가 KBO 리이호준의 WAG 중에서 최고의 외모를 자랑한다고 찬양한다. 이호준은 아내를 위해 자신의 연봉으로 외제차를 구입했으며, 신사적인 면모도 강조된다. 이호준은 아내에게 신발을 신겨주는 모습으로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더했다.
이호준의 자녀들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큰아들 이동훈은 프로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이호준이 선수로서의 목표를 세우는 데 영향을 주었음을 나타낸다. 이호준은 자신의 야구 경력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어하는 듯 보이며, 이는 부자 간의 특별한 유대감을 보여준다.
이호준은 선수협 회장인 박재홍을 밀며 이호준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박재홍은 초기에는 회의론이 많았으나,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며 이호준의 평판을 높였다. 이와 같은 인물에 대한 판단력은 이호준이 단순한 선수로서의 경력을 넘어, 리더로서의 자질도 갖추었음을 증명한다.
이호준은 입담이 뛰어난 해설자로도 알려져 있으며, 다양한 방송에 출연해 이호준의 유머 감각과 이야기 솜씨를 뽐내었다. 특히, '엔씨' 2행시는 팬들 사이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남아 있다. 이호준의 매력적인 성격과 재능은 방송사에서도 그를 해설가로 섭외하려는 노력을 이끌어냈다.
이호준은 선수로서의 경력을 통틀어 한국 프로야구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호준은 한국시리즈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하며, 자신이 소속했던 팀들이 연이어 우승하는 기록을 남겼다. 이는 이호준이 프로 선수로서의 커리어를 어떻게 꾸려 나갔는지를 잘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호준은 단순한 야구 선수를 넘어, 한국 프로야구의 전설적인 인물로 자리 잡았다. 이호준의 삶은 야구 팬들 사이에서 “투수는 선동열, 타자는 이승엽, 야구는 이종범, 인생은 이호준처럼”이라는 말로 회자되며, 이는 이호준이 어떻게 한 선수로서의 기록을 넘어서, 인생의 승리자로 인식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야구 선수로서의 경력, 가족과의 유대, 그리고 리더로서의 역할을 통해 이호준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