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현종 : 국가안보실 1차장,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5. 6. 15. 15:24
반응형
김현종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외교관이자 통상 전문가입니다.그는 윌브러햄 앤 몬슨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국제정치학 학사 및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같은 학교 로스쿨에서 법학 박사(J.D.) 학위를 받았습니다. 육군 소위로 병역을 마친 그는 변호사, 대학교수, 외무부 고문 변호사 등 다양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특히 세계무역기구(WTO) 법률자문관을 역임하며 국제 통상 분야에서의 전문성을 다졌습니다.
반응형

김현종은 참여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참여정부에서는 제3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장관급)을 맡아 대한민국의 통상 정책을 이끌었으며, 이후 제21대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특명전권대사로 활동하며 국제 외교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습니다.문재인 정부에서는 초대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차관급)을 역임하며 다시 한번 통상 분야를 책임졌고, 이어서 제5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으로 임명되어 국가 안보 전략 수립에 기여했습니다.그는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으로도 활동하며 외교안보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쌓았습니다.

김현종

김현종은 국제 통상 분야의 전문성과 풍부한 외교 경험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외교 및 통상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는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을 보호하고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온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입니다.

 

김현종: 대한민국 최고의 통상 외교 안보 협상가이자 전략가

 

김현종은 대한민국의 전직 정무직 공무원이자 국제 변호사로,WTO(세계무역기구) 법률국 법률자문관 및 상소기구 위원을 역임한 바 있습니다.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통상,외교,안보 협상가이자 전략가로 평가받습니다.특히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한국을 개방형 통상 국가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으며,미국과의 안보동맹을 넘어 경제동맹을 구축하고,한미 미사일 지침 개정과 완전 종료를 주도하여 군과 산업·과학계의 오랜 족쇄를 풀어냈다는 점에서 통상,외교,안보 모든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낸 유일한 인물로 꼽힙니다.

그의 주요 업적을 살펴보면,참여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서 한미 FTA를 포함한 45개국과의 동시다발적 FTA 로드맵을 설계하고 직접 협상을 주도하여 협정 타결을 이끌어냈습니다.이후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산업통상자원부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아 트럼프 1기 정부와의 한미 FTA 개정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시켰습니다.또한,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2차장 역임 당시 직접 미국 백악관과 협상하여 한미 미사일 지침의 개정 및 완전 종료를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생애 및 경력 초기

 

김현종은 김병연 전 주우루과이,노르웨이 대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그는 미국 매사추세츠의 보딩스쿨인 윌브러햄 앤 몬슨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정치학 학사,국제관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또한 컬럼비아 로스쿨 J.D.과정을 수료하여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미국 로펌에서 근무하다 1989년 귀국한 그는 김·신&유 법률사무소에서 국제 상사 중재와 국내 기업의 해외투자 관련 법률상담,지적재산권 업무 등을 주로 담당했습니다.1993년에는 홍익대학교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학계에서도 활동했습니다.이러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1995년 당시 문민정부의 WTO 분쟁해결 대책반 고문 변호사로 위촉되기도 했습니다.이후 2009년부터 2012년까지 삼성전자 해외법무 사장을 지내며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국제 소송전을 진두지휘했습니다.당시 삼성과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이 맞지 않아 사장직에서 물러났으며,2012년 대선을 앞두고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하며 다시 국익에 기여하고자 했다고 밝혔습니다.20대 총선에서 민주당 외부 영입 인사로 인천 계양구 갑 지역구에 도전했으나 경선에서 패배했고,이후 한국외대 LT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세계무역기구(WTO) 상소위원을 역임했습니다.

참여정부 및 문재인 정부에서의 활약과 주요 사건들

 

참여정부시절인 2004년,만 45세의 나이에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파격 발탁되어 한미 FTA 타결을 주도했습니다.노무현 전 대통령의 당선인 시절 세계 통상 현안에 대한 브리핑을 맡게 된 것이 인연이 되었으며,문재인 전 대통령의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도 김현종 본부장의 브리핑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언급됩니다.노 전 대통령의 퇴임 후에도 봉하마을을 찾을 정도로 깊은 신뢰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2017년 7월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에 임명되었습니다.당시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은 그의 경제통상 분야 전문성과 경험을 인선 배경으로 밝혔습니다.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기조와 한미 FTA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응하여 김현종 본부장의 역할이 중요하게 부각되었습니다.2018년 3월 한미 FTA 재개정 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시켰으며,대체적으로는 명분을 내어주고 실리를 취하는 전략으로 미국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특히 미국 철강 관세 면제도 이끌어냈는데,이는 당시 미국 철강 관세 부과 대상 국가 중 협상을 통해 관세 부과 방침을 철회시킨 첫 사례였습니다.그러나 일부에서는 철강 관세 면제라는 명분에 집착하여 쿼터를 받아들임으로써 실리를 내준 것이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되었습니다.

2019년 2월 28일에는 국가안보실 제2차장에 임명되었습니다.취임 직후부터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과의 불화설이 불거졌고,결국 2021년 1월 강 장관과 함께 교체되어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가 4월에 완전히 물러났습니다.강경화 장관과의 불화는 문재인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 중 외교부 문건 오탈자 및 비문 문제를 김현종 차장이 지적하며 불거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는 외교부의 기강 해이와 청와대 어공(전문 임기제 공무원)과 늘공(직업 출신 공무원) 간의 불신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 이후에도 그의 활약은 계속되었습니다.2021년 11월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국제통상 특보단장을 맡아 요소수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하여 요소 확보에 기여했습니다.2025년 2월 7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로 발표되었고,이재명 당대표의 외교안보보좌관으로 임명되었습니다.그는 위성락,조현 등과 함께 이재명 대표의 외교 멘토로 여겨지며,민주당의 대선 승리 이후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보 복귀에 대한 하마평도 나왔습니다.

기타 평가 및 논란

 

김현종은 한미 FTA 체결 당시와 이후에도 반 FTA 성향의 강성 진보 진영으로부터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그러나 훗날 당시 협상의 전말과 성과가 드러나면서 '민족을 위해 일했다','민족주의 성향 엘리트다'라는 식으로 재평가를 받게 됩니다.그의 저서 '김현종, 한미 FTA를 말하다'에는 미국과의 공격적인 협상을 통해 국익을 최대화하고,국력을 배양하여 일본과의 경쟁에서 승리해야 하며,적극적인 통상 전략을 통해 남북통일을 준비해야 한다는 그의 독특한 캐릭터와 신념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또한,이 책에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시종일관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오마이뉴스와 같은 진보 언론에서는 그를 '동맹파'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으며,'자주파'로 분류되는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의 제자인 최종건 청와대 평화기획비서관과의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했습니다.한미 FTA 성사와 개정 협상을 진두지휘하고 삼성전자의 해외 법무 사장을 역임한 경력 때문에 진보 세력에서는 그를 좋게 보지 않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김현종은 2016년 1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한다면 핵폐기물 재처리 허용,원화-달러 통화스와프 체결,1단계 위성 발사체 기술 이전,3000톤급 핵잠수함 건조 허용,800km로 묶여 있는 미사일 사거리 확장 등 다섯 가지 반대급부를 챙겨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공교롭게도 그가 통상교섭본부장을 거쳐 국가안보실 2차장으로 근무한 약 3년 동안 이 다섯 가지 중 네 가지가 사실상 실현되어 그의 혜안이 재조명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한미 FTA 협상 당시 쌀 개방 문제를 두고 미국 무역대표부 카란 바티아 부대표와 담판을 지을 때 보여준 그의 강짜는 유명합니다.그는 쌀 개방 문제에 대한 양보는 없으며,만약 이 문제로 FTA 협상이 깨지면 자신은 한국 국민들의 영웅이 될 것이라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또한,쌀 개방을 원하면 미국의 조선업을 보호하는 존스법(Jones Act)을 개정하여 한국 조선업계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요구하며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했습니다.이는 미국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을 정면으로 건드려 압박하는 김현종의 협상 전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019년 일본의 아베 정권이 대한민국의 강제징용 판결에 반발하여 일으킨 한일 무역 분쟁 당시에도 김현종은 일본에 대한 압박을 주도하며 WTO 제소,화이트 리스트 제외,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통보 등 강경 대응을 펼쳤습니다.동시에 국내 소부장 산업 국산화와 수입 다변화 전략을 주도했습니다.특히,2004년 한일 FTA 협상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국내 부품 산업의 높은 대일 의존도를 지적하며 일본발 무역 전쟁 가능성을 경고하며 한일 FTA 협상을 중단시킨 그의 선견지명이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그의 광범위한 대외 네트워크를 활용한 대미 여론전 또한 일본의 예상과 달리 한국에 유리하게 전개되는 데 기여했습니다.이 때문에 일본 언론에서는 김현종을 "극한의 대일 강경파"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교수,장군,이재명,lg,엘지,프로필,통상교섭본부장,외교안보보좌관,통상교섭본부장 영어,가족,나무위키,외교부 장관,중장,노무현,백악관,관련주,특보,강경화,국방개혁비서관,학력,이재명,국방,논란,야구,자녀,국어,건축가,한국외대,한미 fta를 말하다,나이,재산,트럼프,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