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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 제32대 통일부장관,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5. 6. 4. 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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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은 대한민국의 외교·안보 및 통일 분야에서 오랜 기간 활약한 정책전문가이자 제32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1958년 5월 11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태어난 그는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학계와 연구기관을 넘나들며 북한 및 통일 문제에 천착해온 그는 세종연구소에서 수석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정책 분석과 자문 역할을 맡았고, 문민정부 시기부터 통일부 정책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등 정부 정책 수립에도 직간접적으로 기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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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은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정치행정위원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원으로 참여하며 남북관계 진전에 실무 차원에서 깊이 관여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뒤에는 제16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외교통일안보분과에서 활동했고, 이어 2003년부터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차관급)으로 임명되어 외교·안보 분야 전반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2006년 2월에는 제32대 통일부 장관에 임명되어 같은 해 12월까지 재임하며, '햇볕정책'의 연장선상에서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와 실질적 협력 확대를 위해 노력하였다. 재임 기간 중 그는 북한과의 대화 기조를 유지하며 남북 간 상호신뢰 회복과 평화 정착 기반 마련을 목표로 정책을 펼쳤다.

이종석

 

장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그는 한반도 평화와 통일 문제에 대한 연구와 실천 활동을 지속해왔다.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민간 차원의 평화협력 논의에 참여했고, 중국 베이징대학과 연세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지내며 학문적 연구와 교육에도 힘썼다. 현재는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이자 한국통일협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며,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거주하고 있다. 배우자 유순주 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통일·외교·안보 전문가로서의 깊은 식견과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여전히 국내외에서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이종석은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외교·안보 및 통일 정책 전문가로, 참여정부 시절 제32대 통일부장관을 지낸 대표적인 북한·통일 문제 연구자이다. 그는 대북 화해협력 기조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실무 현장에서 구현해 온 실질적인 정책 설계자로 평가된다. 1958년 5월 11일 경기도 양주군에서 출생한 그는 용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4년 성균관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금성사(현 LG전자)에 입사해 2년 반 동안 직장 생활을 이어가던 중 학문에 대한 열정을 키워 회사를 퇴사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정치외교학과에 진학했다. 그는 장을병 교수의 지도를 받아 석사 및 박사 과정에서 북한 지도집단의 항일무장투쟁과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 및 구조변화를 주제로 논문을 집필했으며, 대학원 재학 중에도 북한 관련 논문을 활발히 발표하며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해방전후사의 인식> 등 저명한 북한 연구물에 이름을 올리고, 김일성 위인화에 대해 제기된 '가짜설'을 반박하는 데 적극 참여해 학문적 입지를 다졌다.

 

1994년부터 세종연구소에 몸담으며 본격적인 북한학 연구를 시작한 이종석은 햇볕정책의 이론적 근거를 적극 옹호하고, 대북 포용의 타당성을 주장해 통일정책의 지향을 구체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러한 입장은 국민의 정부 시절인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대통령 특별수행원으로 포함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이후 2003년 출범한 참여정부에서는 외교·안보 분야의 실무 핵심으로 부상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외교통일안보분과위원을 시작으로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으로 임명되었다. 이 시기 그는 명목상의 2인자였지만, 사실상 노무현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을 실질적으로 설계하고 주도한 인물로 평가받았다. '평화번영 정책', '균형적 실용외교', '협력적 자주국방' 등의 외교안보 기조는 그의 정책적 기획을 토대로 수립되었으며, 이라크 추가 파병을 3,000명 이내로 제한한 결정 등 외교현안에서도 주요한 조정자 역할을 했다. 그는 자주적 대미 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지향한 '자주파'의 대표주자로 언론에 부각되었으며, 이는 당대 외교부 내 '동맹파'와의 정책적 긴장과 차별을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2006년 2월, 이종석은 제32대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되며 비교적 젊은 나이에 장관직에 올랐다. 통일부장관 재임 중에는 남북관계의 제도적 기반과 상호 협력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노력을 지속했다. 그러나 같은 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방코 델타 아시아(BDA) 제재로 북한은 대외적 압박에 맞서 미사일 발사(2006년 7월) 및 첫 핵실험(2006년 10월)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 이는 국제사회 및 국내 정치권의 큰 파장을 불러왔으며, 특히 북한의 핵개발이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협력 자금을 통해 이뤄졌다는 주장이 보수층에서 제기되면서, 이종석 장관은 집중적인 비난을 받았다.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그는 2006년 12월 외교부장관, 국방부장관과 함께 동반 교체되며 공직에서 물러났다.

공직 이후에도 그는 세종연구소로 복귀해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통일 문제에 대한 학문적 분석과 정책적 제안을 지속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나 칼럼을 통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피력하고 있으며,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자문을 제공하는 등 공적 조언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2021년에는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의 대선 준비 외곽조직인 '민주평화광장' 공동대표를 맡으며 정치적 움직임에도 참여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외교기조를 분석하며, 한미동맹 중심의 외교 틀 속에서도 국익 기반의 다자외교 균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한중 관계를 "지리적 숙명에 가까운, 대립할 수 없는 구조"로 분석하기도 했다.

이종석은 통일, 외교, 북한 관련 분야에서 다수의 저서를 출간하며 학문적·정책적 성과를 남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칼날위의 평화: 노무현시대 통일외교안보비망록』(2014), 『통일을 보는 눈』(2012), 『한반도평화통일론』(2012), 『북한의 역사 2: 1960∼1994』(2011), 『북한-중국 국경: 역사와 현황』(2017), 『Peace on a Knife’s Edge』 (2018), 『제재 속의 북한 경제』(2019, 공저) 등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연구서를 넘어 당시 정부의 정책적 고민과 외교 현실을 생생히 증언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현재 그는 세종연구소 명예연구위원이자 사단법인 한국통일협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며, 대한민국 통일정책의 이론과 실천을 함께 체화한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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