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박지원 : 민주당 소속 5선 국회의원,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5. 6. 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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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은 1942년 6월 5일 전라남도 진도군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제35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냈다. 본관은 밀양 박씨이며, 호는 단재(旦齋)이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와 전남 해남군에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제2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종교는 가톨릭(세례명 요셉 빌체프스키)이며, 신체는 167cm, 70kg이다. 가족으로는 배우자 이선자와 두 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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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은 오산국민학교, 진도중학교, 문태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광주교육대학 초등교육과와 단국대학교 상경대학을 졸업하였다. 병역은 육군 제31보병사단 병장으로 복무하며 1967년 만기 전역하였다. 젊은 시절에는 럭키금성상사와 동서양행 뉴욕지사에서 근무하였고, 뉴욕 한인회장과 미주지역한인회 총연합회 회장을 역임하며 재외동포 사회에서도 활동했다.

 

정치 경력으로는 민주당과 새정치국민회의 등 다양한 정당에서 대변인과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냈으며,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정책기획수석 등 청와대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김대중 정부 시절 핵심 측근으로 활동했으며, 문재인 정부에서는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했다. 김대중기념사업회와 김대중재단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김대중 정신 계승에 힘쓰고 있다.

박지원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정치인이자, 긴 정치 경력과 정무 감각으로 ‘정치 9단’이라는 별칭을 얻은 인물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활약하며 문화관광부 장관, 대통령비서실장, 국가정보원장 등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국회의원으로는 5선을 기록한 중진이다. 오랜 세월에 걸친 정치 경험과 정세 판단력, 언변과 유머 감각은 그를 정치권의 실세 중 하나로 만들었다. 박지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전라남도 해남·완도·진도 지역구에서 활동했으며, 호남 정치의 큰 축으로서도 의미 있는 입지를 다졌다.

 

박지원의 정치적 출발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깊은 인연에서 비롯됐다. 김대중의 대언론 창구 역할을 하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이후 김대중 정부에서 대통령비서실장과 문화관광부 장관을 역임하며 실무와 정무를 겸비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0년 남북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핵심 실무를 담당하며 남북관계의 전환점에 기여했고, 이 공로로 그의 정치적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그는 정치권에서 ‘정치 9단’, ‘족집게’, ‘꾀돌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뛰어난 정무 감각과 언론 대응 능력을 보여주었다. 말솜씨가 좋고, 정보 수집과 해석 능력이 탁월하여 상대 정치인의 허점을 공략하는 데 능하며, 판세를 읽는 눈도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와 관련하여 권성동 의원은 박지원을 "타고난 정치 감각을 가진 인물"이라 평하기도 했다. 국민의당 시절에는 원내대표로서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정당의 입지를 호남에서 굳건히 하는 데 기여했다.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보다 더 적극적으로 정국을 주도한 것은 당시 국민의당 원내대표였던 박지원이었다. 그는 각종 언론 인터뷰와 방송 출연에서 냉철한 분석력과 유머를 결합해 정세를 풀어내는 능력으로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SBS 등 방송에도 초대받으며 여론을 주도했고, 이런 측면에서 그의 정국 대응력은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박지원은 정당 간의 분열과 재편에 있어서도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합당 이후 미래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고, 자유한국당과의 재합당 가능성도 일찌감치 예측하였다. 실제로 이런 예측은 미래통합당이라는 이름으로 현실화되며 정치적 안목이 입증되었다.

기자들과의 유대도 두터워, "야권 고위 관계자"라는 이름 아래 언론 보도에 자주 등장하였으며, 이는 곧 박지원의 발언으로 여겨질 만큼 그의 언론 장악력과 메시지 전달력은 뛰어났다. 그는 과거 김대중 대통령의 국정 장례를 치르던 과정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협조에 대해 고마움을 표시하면서도, 이명박 정부의 정치공작에 대해서는 맹렬히 비판하였다. 국가정보원의 대북공작금 유용 사건, 노벨평화상 수상 취소 시도 등에 대해 SNS와 방송을 통해 날선 발언을 이어갔고, MB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였다.

 

그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도 긴장과 협력의 이중적 면모를 보였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민주당의 분당 및 대북송금 특검 등을 둘러싸고 갈등을 겪었으며, 제19대 대선 당시에는 ‘문모닝’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문재인 후보를 비판하였다. 그러나 대선 이후에는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 등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며, 문재인 정부의 평화외교에는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햇볕정책에 대한 박지원의 확고한 신념도 그의 정치적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다. 그는 김대중의 외교·통일 철학을 충실히 계승하며, 미국과의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를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다. 김대중-클린턴 협력의 상징이었던 대북정책에 대해서도 자주 언급하며, 지금도 미국을 설득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국가정보원장 재임 중에는 일본의 스가 총리와의 회동에서 정면 출입과 언론 노출이라는 비전통적 방식으로 국제 외교에서 화제를 모았다. 이는 일본 정부가 정보 관리 실패로 비판받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고, 일본 언론에서는 박지원을 ‘약은 사람’으로 평가했다. 또한 그는 미국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의 방한과 관련한 예측이 빗나가기도 했지만, 여전히 국내 정치 현안과 국제 정세에 대해 예리한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박지원은 80세를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언론과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이 그를 정치권의 원로이자 살아있는 ‘정치사 교과서’로 여긴다. 그는 자신의 정치철학과 정무 감각, 실용적인 현실 인식으로 여전히 여의도 정치의 중요한 인물로 남아 있다. 그의 정치적 행보는 단순한 생존이 아닌, 시의적절한 판단과 유연한 처세, 그리고 일관된 원칙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많은 정치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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