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故 휘성 : 가수,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5. 3. 1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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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성(본명 최휘성, 崔輝晟, Choi Whee-sung)은 1982년 2월 5일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면목동에서 태어난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관은 해주 최씨이며, 신체는 171cm, 60kg, 혈액형은 O형이다. 가족으로는 아버지 최광복, 어머니 김용숙, 남동생 최혁성이 있다. 학력은 서울면목국민학교, 염창중학교, 마포고등학교, 아현산업정보학교 실용음악과를 졸업하고, 선문대학교에서 신문방송학을 중퇴한 뒤 국제사이버대학교에서 경영정보학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컨텐츠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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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정규 1집 《Like A Movie》로 데뷔한 휘성은 감미로운 보컬과 섬세한 감정 표현으로 사랑받아 왔다. 그는 군 복무 기간 동안 육군훈련소 조교로 복무하였으며, 2011년 11월 7일부터 2013년 8월 9일까지 병장으로 만기 전역하였다. 종교는 과거 증산도였으나 현재는 무종교로 알려져 있다. 오랜 기간 타조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해온 그는 2024년 기준으로 데뷔 22주년을 맞이하며 음악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지켜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25년 3월 10일, 서울특별시 광진구 자양동에서 향년 43세로 별세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오랜 시간 대중들에게 깊은 감동과 위로를 선사했던 휘성은 한국 음악사에 길이 남을 아티스트로 기억될 것이다.

휘성: 음악으로 인생을 노래한 싱어송라이터

 

휘성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로, 깊은 감성과 독보적인 음악적 색깔로 대중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그의 음악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가수로서의 성공에 이르기까지, 그의 인생은 치열한 노력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가난했던 어린 시절과 음악을 향한 첫걸음

 

휘성은 자서전에서 자신과 가족이 매우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고백했다. 어린 시절, 남들 모두가 휴대전화를 사용할 때, 그는 삐삐를 빌려 사용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다. 음악학원비 13만 원이 부담스러워 부모님께 말할까 말까 고민했던 일화는 그의 성장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중학교 시절 댄스 팀에 들어가면서 연예계에 첫 발을 내디뎠다. 1997년부터 1999년까지 댄스 팀 'ING' 소속으로 S.E.S., J.ae 등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의 백댄서로 활동했다. 이 시기를 통해 무대 경험을 쌓았지만, 그에게는 노래라는 또 다른 도전이 남아 있었다.

방황과 끊임없는 연습의 시간

 

휘성은 베이비복스 소속사 DR 뮤직에서 배출된 4인조 그룹 'A4'의 멤버로도 잠시 활동했다. 그러나 이 시절의 활동은 대중적인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본인도 인정하듯 이 시기의 음악적 역량은 미흡했고, 결국 1집 활동을 마치고 탈퇴했다. 이후 그는 개인적인 방황의 시기를 겪었다.

 

그러나 휘성은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박효신, 환희와 같은 직업고등학교 음악반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음악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부끄러움을 이기기 위해 밤마다 산속에서 노래 연습을 했고, 이로 인해 경찰에 오해를 사기도 했다. 이후 장소를 하수도 관리 시설로 옮겨 6개월간 매일 8시간씩 연습하며 가창력을 쌓았다. 이러한 고된 노력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여정이었다.

음악적 성장과 데뷔까지

 

휘성은 이후 나우누리의 흑인 음악 동호회 'SNP'에서 활동하며 버벌진트, 4WD, 데프콘, 피타입, 정인 등과 교류하면서 음악적 시야를 넓혀갔다. Dru Hill의 멤버 시스코를 동경해 '휘스코'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MAME'라는 밴드로 강변가요제에 참가하게 되었고, 이 자리에서 심사위원 이상우의 눈에 띄어 기획사 연습생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박경진과 함께 'M-boat'라는 소속사에서 활동하게 되었고, YG엔터테인먼트와 제휴해 홍보와 매니지먼트를 받게 되었다.

그는 선문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국제디지털대학교에서 경영정보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경희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며 학문적 기반도 다져갔다.

화려한 데뷔와 끊임없는 도전

 

2002년, 휘성은 정규앨범 1집 'Like a Movie'로 가수로 데뷔했다. 타이틀 곡 '안 되나요...'는 월드컵 열기 속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후 2집 'It's Real'로는 지상파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골든디스크 본상을 수상하는 등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그는 여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음악적 변화를 위해 소속사를 바꾸고 퍼포먼스 위주의 음악을 시도했다. 5집 이후부터는 퍼포먼스 중심의 활동을 이어갔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다. 특히 해외 아티스트들에게도 실력을 인정받아 필 콜린스, 크레이그 데이빗, Ne-Yo, Akon 등과의 협업 기회를 얻었다.

어려움 속에서도 지켜낸 음악적 자부심

 

휘성은 어려운 노래를 소화하는 능력으로 유명하지만, 기관지가 약하고 만성 비염으로 고생해왔다. 데뷔 초기부터 성대결절로 어려움을 겪었으며, 2008년 낭종 제거 수술을 받기도 했다. 이후 발성에 더욱 신경을 쓰며 안정적인 노래를 선보였지만, 그만큼 휘성만의 독특한 느낌이 줄어들었다는 평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음악적 색깔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독립과 새로운 도전

 

2010년 이후 그는 독립해 자신의 기획사를 설립하고 활동을 이어갔다. 어려움 속에서 태진아와 인연을 맺고 YMC엔터테인먼트에서 활동하기도 했지만, 결국 본인이 직접 설립한 'RealSlow Company'에서 독자적으로 활동 중이다.

휘성은 데뷔 이후 꾸준히 음반을 발매하고, OST 작업에도 참여하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음악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과 극복의 연속이었으며, 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맺으며

 

휘성은 단순한 가수가 아니라, 인생의 어려움을 음악으로 극복해온 예술가다. 그의 음악은 단순한 멜로디를 넘어, 삶의 치열함과 진정성을 담고 있다. 이러한 그의 인생 여정은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감동을 주며, 앞으로도 그의 음악은 계속해서 대중의 마음을 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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