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석동현 : 윤석열 대통령과 40년지기의 변호사.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5. 5. 2.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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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현은 1960년 7월 10일, 경상남도 부산시 동구 범일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충주 석씨로, 성남국민학교, 대연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며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쳤다. 이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제15기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며 법조계에 입문했다. 석동현은 검사로서 경력을 쌓았으며, 청주지방검찰청 영동지청장, 대검찰청 공보담당관,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1부장,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다양한 검찰 보직을 거쳤다. 또한, 법무부 법무과장, 대검찰청 전략과제연구관, 부산광역시청 고문변호사 등 중요한 역할을 맡으며 법조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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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동현의 경력은 검찰 외에도 다양한 분야로 확장되었다. 그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대전고등검찰청 차장검사 등을 역임하며 법적 전문성과 함께 관리 능력을 입증했다. 또한 정치와 관련해서도 활동을 펼쳤다. 그는 자유한국당 해운대갑 당협위원장직을 맡으며 정치적인 경험을 쌓았으며, 윤석열 국민캠프 특보단장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석동현은 법조인뿐만 아니라 정치와 공공 분야에서도 영향력 있는 인물로 자리잡았다.

 

2022년 10월 11일, 석동현은 제26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평화통일과 관련된 여러 중요한 업무를 담당했으며, 2024년 1월 10일까지 이 직을 수행했다. 석동현은 법적 전문성과 관리 능력을 바탕으로 사무처장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하며, 윤석열 정부 하에서 중요한 국가적 과제인 평화통일을 위한 정책에 기여했다. 현재 그는 법무법인 동진의 대표변호사로 활동하며, 여전히 법조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석동현: 대한민국의 법조인 및 정치인

 

석동현은 대한민국의 법조인 겸 정치인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쳐온 인물입니다. 그의 생애와 경력은 법률과 정치의 중요한 교차점에서 빛을 발하며, 여러 논란과 성과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석동현은 1960년 경상남도 부산시 범일동에서 태어났으며, 부산성남초등학교, 부산대연중학교, 부산동고등학교를 거친 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입학해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1983년 제25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조인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사법연수원 15기로 수료한 뒤, 그는 검사로서 경력을 쌓아가며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서울동부지방검찰청 검사장 등 주요 직책을 맡았습니다.

 

그의 검사 생활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는 2012년 발생한 부하 검사와 피의자의 성관계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법조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고, 석동현은 상급자로서 책임을 지고 사직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사건의 후속 조치로 서울북부지검의 고형곤 검사가 사건 기록을 무단으로 열람하며 2차 가해를 일으켰고, 석동현은 이 사건에도 연루되면서 이름이 다시 언급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검찰 경력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되었으나, 이후 법조계의 여러 중요한 자리에서 활동을 지속해왔습니다.

법무부 공직과 외교적 성과

 

석동현은 법무부에서 중요한 직책도 맡았습니다. 2011년, 그는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으로 임명되었으며, 그가 이룬 주요 성과 중 하나는 한미 양국 간 '무인자동출입국심사대 상호 이용' 합의입니다. 이를 통해 대한민국은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미국과 무인 입국심사 시스템을 도입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기 시간이 길기로 유명한 미국 공항에서 장시간 대기하지 않고 글로벌 엔트리 프로그램을 통해 빠르게 입국할 수 있는 혜택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외교적 성과는 그의 경력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입니다.

 

2011년 8월, 그는 일본 극우파 의원들이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며 입국하려는 시도를 막은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일본의 신도 요시타, 이나다 도모미, 사토 마사히사 의원은 독도 방문을 시도했으나 석동현 본부장은 이들의 입국을 거부하고 일본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가 이 문제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한 덕분에 대한민국의 독도 영유권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전 세계에 알리게 되었고, 이는 국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공직 퇴임 후 활동

 

석동현은 공직을 퇴임한 후에도 법조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2013년부터 변호사로 활동을 시작하며,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인 '한변'의 공동대표로서 북한 주민 인권 증진과 민주평화통일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2020년 9월, 북한인권법이 시행된 지 4년이 지나면서 북한인권재단 출범과 북한인권대사 임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 대해 비판하며, '한변'의 국회 앞 1인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그의 지속적인 관심과 헌신을 잘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그는 또한 여러 정치적 사건에 개입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는 민간인 사찰 지시 혐의로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국군기무사령관을 변호하며 구속영장 기각을 이끌어냈고,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자 이를 위국헌신의 인물로 평가하며, 수사 과정에서 겪었던 부당함을 호소했습니다. 또한 2020년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변호를 맡아, 법적 대리인으로 활동하면서 그에 대한 변호를 이어갔습니다. 2019년에는 선거법과 공수처법 패스트트랙 파동으로 고발된 나경원 원내대표와 자유한국당 의원들을 변호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에서 김기현 전 울산시장을 변호하는 등, 정치적 사건에 법률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치 활동과 논란

 

석동현의 정치 활동은 그의 법조 경력과 맞물려 계속되었습니다. 그는 2013년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해운대구·기장군 갑 지역구 당협위원장에 공모했지만 배덕광 전 해운대구청장에게 밀려 당협위원장에 임명되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는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누리당에서 부산광역시 사하구 을 선거구 공천을 신청했지만, 당시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하고 새누리당에 입당한 조경태 의원에 밀려 탈락했습니다. 2017년에는 새누리당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갑 당협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나 김병준 비대위에서 당무감사를 통해 당협위원장 교체를 시도하자 이에 반발하며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2020년에는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 해운대구 갑 출마를 타진했지만, 하태경 의원이 보수 대통합에 따른 후보로 출마하게 되면서 이번에도 출마에 실패했습니다.

 

2022년에는 민주평통 사무처장에 내정되었으며, 같은 해 10월에는 수석부의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023년에는 법치와 정의 실현, 이주민 및 재외동포의 권리와 인권 보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3 김상철자유정의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논란과 논란의 발언

 

석동현은 정치 활동 중 여러 차례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특히 2019년 8월 '문재인 하야' 집회에 참석해 한 발언이 큰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는 "나라와 국민에게 반역하는 행위만 아니라면, 나는 친일파가 되겠다"는 발언을 하였고, 이는 "국익을 위해 일본과 잘 지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되었으나, '친일'이라는 단어 사용이 부적절했다고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국내에서 '친일'이란 용어가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논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한,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에 대한 '물갈이' 발언이나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하는 세력인 '윤사모'의 회원들을 자문위원으로 등용하겠다는 발언도 논란을 일으켰습니다. 이러한 발언은 민주평통의 독립적이고 중립적인 역할을 의심하게 만들었고, 정치적 편향성을 문제삼는 목소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후속 대응으로 그는 이러한 발언을 정당화하며, 윤사모 회원들을 자문위원으로 포함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가관이 뚜렷한 인물들'을 등용할 것이라고 해명하였습니다.

여담과 개인사

 

석동현은 법조인으로서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남긴 국적법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아내 박영아는 물리학자로 명지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79학번으로 같은 시절 석동현과 만나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박영아는 한나라당에 입당해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석동현은 아내와 달리 정계에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으나, 여전히 정치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는 서울대학교 법대 시절부터 친분이 깊었으며, 두 사람은 40년 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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