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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 : 새미래민주당 제21대 대통령 후보, 그에 대해 알아보자.

사람인물배우 2025. 5. 7.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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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으로, 현재 새미래민주당 제21대 대통령 후보로 활동 중이다. 그는 1952년 12월 20일 전라남도 영광군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후 정치에 입문하였다. 이낙연은 제16대 국회의원으로서 새천년민주당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민주당의 다양한 직책을 맡았다. 특히, 제45대 국무총리로 문재인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제37대 전라남도지사로도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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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은 정치 경력 외에도 언론인으로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동아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정치부, 논설위원, 국제부 주일특파원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했다. 또한, 제16대부터 제21대까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특히 국회에서 한일의원연맹 간사장, 민주당의 원내대표, 대변인 등을 맡으면서 많은 정치적 경험을 쌓았다. 그는 제45대 국무총리로서도 중요한 정책들을 추진했으며, 그 이후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 코로나19 극복위원장 등의 역할을 맡았다.

이낙연

이낙연은 전라남도 영광군 출신으로, 그의 가족은 아버지 이두만, 어머니 진소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결혼하여 장남 이동한을 두고 있다. 그는 또한 군 복무를 마친 후 정치에 입문하였으며, 다양한 정치적 노선을 따라가면서 한국의 중요한 정치인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칼럼] 이낙연, 언론인에서 대통령 후보까지: 한 시대를 관통한 정치인의 여정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이낙연만큼 다층적인 경력을 지닌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에서 시작해 국제부 주일특파원, 논설위원을 거친 언론인 이력, 이후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해 5선 국회의원, 전라남도지사,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 그리고 현재는 새로운미래민주당의 제21대 대통령 후보까지. 그는 정계에 몸담은 25년간, 언론과 정치를 아우르며 한국 현대사의 주요 국면을 관통해 왔다.

이낙연의 정치적 여정은 단순한 입지 확장이 아니라 시대와 정치의 파고를 타며 살아남은 기록이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남 함평·영광에서 첫 당선된 그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특위부터 예산결산위원회, 통일외교통상위까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입법 활동에 착실히 임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대선캠프 대변인, 당선인 대변인을 지내며 정치적 중추로 부상했고, 특히 열린우리당 분당 당시 독자노선을 유지하며 흔들림 없는 원칙주의자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2004년과 2008년, 2012년 연이어 재선과 삼선을 거듭하며 그는 민주당의 중진으로 자리잡았고, 2014년 전남지사에 당선되면서 중앙정치에서 지방행정으로 영역을 넓혔다. 도지사 시절 ‘100원 택시’와 ‘찾아가는 영화관’ 등의 생활 밀착형 정책은 중앙정치에서 볼 수 없었던 실용적 면모를 드러냈고, 고용노동부로부터 일자리 정책 성과로 종합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안군 섬노예 사건 등 민감한 지역 사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존재해, 정치인 이낙연의 치적에 작지 않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러나 이낙연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문재인 정부의 초대 국무총리로 발탁되면서부터다. 2017년부터 2020년까지 총리직을 수행하며 그는 6공화국 이후 최장기간 재임 총리라는 기록을 남겼고, 국회 대정부질문에서는 깊이 있는 화술과 냉철한 논리로 존재감을 확고히 했다. 그의 발언은 흔들림 없고 정확했으며, 논리적 허점을 최소화하는 전략은 정치적 적수마저도 인정할 만큼 세련됐다.

2020년 총리직을 내려놓은 그는 다시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5선 의원이 되었고, 곧바로 더불어민주당의 당대표로 올라섰다. 그러나 대선 출마를 위해 대표직을 사퇴하고 경선에 나섰으나, 2021년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밀리며 최종 2위에 머물렀다. 이 시기, 이낙연은 부정경선 의혹을 제기하며 한때 강경한 입장을 취했지만 곧 결과를 수용했다. 이후 이재명 캠프에 합류해 상임고문과 총괄선대위원장까지 역임하며 통합을 시도했지만, 선거 결과는 패배로 돌아왔고, 그의 정치적 위상은 급격히 축소됐다.

2022년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의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며 정치적 칩거에 들어갔던 그는 2023년 귀국 후 민주당과의 갈등을 봉합하지 못하고 결국 탈당, ‘새로운미래’를 창당하며 제3지대 정당 실험에 나섰다. 그러나 2024년 총선에서의 참패는 뼈아팠다. 이낙연 본인도 광산구 을에서 13.4%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하며 정치적 존재감에 치명타를 입었다. 특히 민주당과의 지지층 분열, 정치적 메시지의 모호함, 제3지대 통합 실패 등 복합적인 원인으로 참패가 분석되며 이낙연의 정치적 재기에 대한 회의론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2025년, 그는 다시 일어섰다. 새로운미래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그는 정치인생의 마지막 도전에 나섰다. 패배와 낙선을 딛고 다시 무대에 오른 이낙연은 한국 정치사에서 드문 ‘복귀형 정치인’으로, 지금까지의 궤적만으로도 한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낙연이라는 이름 석 자는 단지 정치의 중심에 서 있었던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관찰자의 시선에서 시작해, 참여자의 위치로 올라서기까지 한 인간이 시대와 정면으로 부딪히며 살아낸 과정 그 자체다.

그의 앞날이 어떻게 전개되든, 이낙연은 한국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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