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석은 1966년 4월 24일,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금산리 신기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서울 묵동국민학교와 태릉중학교를 졸업한 후, 용문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에서 무기재료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에는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의장으로 활발히 활동했으며, 이후 정치에 입문해 다양한 사회적 역할을 맡게 되었다. 임종석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정치적 경력을 쌓으며, 청년위원장, 국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그의 정치 경력은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과 대통령비서실장으로 두 차례 주요 직책을 수행하는 것으로 절정에 달했다. 2014년부터 2015년까지 박원순 서울시장의 정무부시장으로 활동하며 서울시정의 중요한 역할을 맡았고,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문재인 대통령 하의 제35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활동하면서 정부의 핵심 외교 및 안보 문제에 영향을 미쳤다. 또한, 임종석은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남북 관계의 중요한 전환점을 이끌었으며, 외교특별보좌관, 외교안보특별보좌관 등의 역할을 통해 대한민국의 외교 정책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임종석은 그 외에도 많은 정치적 직책을 맡으며 대한민국 정치에 큰 흔적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문재인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추진하며 그 신뢰를 얻었고, "림종석", "함박웃음", "플이중" 등의 별명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그는 가톨릭 신자로서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거주하며, 다양한 정치 및 사회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임종석: 대한민국의 학생운동가 출신 정치인
임종석은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으로, 학생운동과 정치 활동을 통해 널리 알려진 정치인입니다. 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활동한 학생운동의 대표적인 인물로, 특히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의장을 지내면서 그 당시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 후 그는 1999년 제16대 총선에 출마하여 정치에 입문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선거를 거쳐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민주당과 관련된 여러 정치적 활동을 펼쳤습니다. 또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의 첫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하며, 문재인 정부의 초창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유년기와 학창 시절
임종석은 1966년 4월 24일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금산리 신기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아버지 임세기(1936.7.5~)와 어머니 경주 김씨(1939.7.2~) 사이의 4형제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경기도 안양시로 이주해 안양서초등학교에 다니다가 5학년 때 서울로 이주하여 중랑구 묵동에서 자라게 되었습니다. 서울묵동초등학교, 태릉중학교, 서울 용문고등학교를 거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임종석은 대학 시절부터 정치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대학 1학년 때부터 그는 노래패에 가담하며 학생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으며, 1988년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이 된 후 1989년에는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제3기 의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전대협 의장으로서의 활동은 그를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학생운동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게 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임종석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았고, 10개월 동안 도망다니며 도피생활을 하던 끝에 1989년 12월, 경희대학교에서 체포되어 5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하지만 1993년, 문민정부 시절 특별사면을 통해 석방되었고, 3년 6개월만에 다시 사회로 돌아왔습니다. 그 후 한양대학교에 복학하여 1995년에 대입 10년 만에 졸업을 했으며, 졸업식에서는 총동문회장상과 공로상을 수여받았습니다.






정치 입문과 초창기 활동
임종석의 정치 입문은 1999년에 이루어졌습니다. 1996년 총선에서는 당시 법적 자격이 부족해 출마하지 못했지만, 1999년 국민의 정부 출범 후 대규모 사면복권을 통해 출마 자격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는 당시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고 서울 성동구 지역구에 출마하여 4선의 이세기 한나라당 의원을 누르고 당선되었습니다. 이로써 임종석은 정계에 입문하였으며, 이후 2004년 17대 총선에서도 당선되어 열린우리당 대변인도 역임했습니다.
그러나 임종석은 의정활동에 있어 대단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초선 의원 시절인 2000년, 그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하여 국회 토론회에 참석했고, 북한 인권법 제정 반대, 대북 교류사업 확대 등을 주장하며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확립해 나갔습니다. 2004년에는 열린우리당 국보법 폐지 입법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국가보안법 폐지에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대북 송금 특검 수사에도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민주당 소장파 의원들과 함께 반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와 서울시 정무부시장
2008년 18대 총선에서는 뉴타운 열풍에 밀려 낙선하였으나, 2010년대 초반,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임명되며 정치적 재기를 노렸습니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서 임종석은 박원순 시장과 함께 서울시의 주요 정책들을 이끌었으며, 박원순계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다졌습니다. 2014년 지방선거 당시 서울시 캠프에서 활약하며 정치적으로 다시 주목받았습니다.



문재인 캠프와 대통령비서실장
2017년, 임종석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 합류하여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으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문재인 후보의 승리를 이끌며, 대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후, 임종석은 초대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되었고, 대통령실의 주요한 업무를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임종석은 문재인 정부 초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었으며, 특히 외교 및 대내적인 문제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018년 4월 27일의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그는 준비위원장으로서 활동하며, 남북 간의 협상 및 회담 의제에 대해 실질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또한, 그는 UAE 특사로 파견되어 양국의 외교적 갈등을 봉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능숙한 대외활동 덕분에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국제적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비서실장 퇴임과 2019년 이후
2019년 1월, 임종석은 대통령비서실장직에서 퇴임하였고, 후임으로 노영민 주중대사가 임명되었습니다. 퇴임 후 임종석은 정치적 재기를 위해 21대 총선에 출마할 계획을 밝혔습니다. 당시에는 서울 종로구에서 출마설이 돌았으나, 결국 2019년 11월 17일에는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정계 은퇴를 암시했습니다. 그 후 민간 부문에서 통일 운동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2020년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이사장으로서 활약을 이어갔으며, 정치적인 행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임종석은 그동안의 정치 활동에서 사회적 평등, 대북 교류, 민주주의 강화와 같은 정책을 꾸준히 주장하며, 민주당 내에서 주요한 인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또한 그는 문재인 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면서, 정부의 주요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며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존재감을 드러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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